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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모임

8월 31일(월요일) - 하늘로부터 임한 말씀(고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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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5: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5: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5: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5: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도입)
고린도전서는 에베소에서 기록이 되었으며, 후서는 A.D. 55년경 마게도냐에서 기록됩니다. 팔레스틴에서 건너온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바울의 사도권을 손상시킵니다. 그리고 교회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대속의 구원이 아닌 ‘다른 복음’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이런 고린도교회를 향해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교리가 증거됩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숨길 수 없는 자신의 세 가지 소망을 함께 증거합니다. 이 소망은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되기는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임한 말씀”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영광”이었으며, 두 번째는 ‘천국’이라는 곳에서 누릴 “영생의 소망”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지치고,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음성이 있습니다. 부정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정한 뜻을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를 향해 “조금만 더 힘을 내어”라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하늘로부터 임한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는 어떤 소망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세워나가야 하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1~3)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영원한 몸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나는 주님의 재림에 참여할 축복된 자라는 참된 소망의 신앙으로 자신의 삶을 이겨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가리켜 ‘땅에 있는 장막’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장차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모습을 가리켜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 칭합니다. ‘땅’은 구조적 측면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세상 또는 어떤 건물의 형태를 지칭하고 있지 않습니다. (창 1:1)과 (9절)에 의하면 ‘땅’의 기원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로부터 일어납니다. 이런 ‘땅’은 (창 1:24)과 (25절), ‘각종 짐승’의 창조와 관련됩니다. 그리고 ‘땅’은 (창 2:7),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흙’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땅에 있는 장막’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몸’에 관한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장막’은 일시적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부활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3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벗은 자’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사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벗은 자’는 죄로 인해 부끄러움 당한 인간의 ‘죄악된 모습’(창 3:10)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주님의 보혈의 옷을 입지 못한 ‘벗은 자’의 모습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고난과 역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버겁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종말’과 ‘심판’, ‘영생’과 ‘영벌’은 장차 펼쳐질 새로움의 시작이라는 사실입니다. 거짓된 무리의 엉터리 가르침에 넘어지는 자는 결국은 ‘벗은 자’의 모습으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바울은 강조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소망하는 것’을 통해 천국에서 이룰 것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천국의 맛을 보지 못하고 어떻게 천국을 소망하고, 소원하겠습니까! 신앙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임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부활의 몸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재림에 참여할 축복된 자라는 ‘신앙 있는 소망’으로 자신의 삶을 일으켜야 합니다. 참된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이 신앙 위에 자신을 단단하게 세워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4~5) 영광스런 몸의 부활을 확신하며 세상의 썩을 것에 목매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자신 있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죽음을 가리켜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되는 탈출의 기회로 여깁니다. 이때 영혼이 몸으로부터 탈출하여 방황하는 모습이 되지 않도록 구원에 따른 지식으로 자신의 영혼을 일깨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바울은 여기에 대해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말하고 있으며, 이것은 영원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계 20:11~15), 영생과 영벌에 따른 ‘백보좌의 심판’은 영혼과 육체가 하나의 인격을 이룬 상태에서 일어납니다. 불신자는 심판에 따른 ‘둘째 사망’이 기다려지는 부활이며, (4절)의 ‘죽을 것’은 이 사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짐진 것같이 탄식한다”라는 말씀은 장차 다가올 영광스런 세상을 갈망하면서 ‘벗은 자’와 같은 ‘죽을 것’이 되지 않도록 신앙으로 자신을 간절히 동여매고 있음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영광스런 몸으로의 부활이 영육간에 이뤄진다는 것에 대해 확신하는 신앙을 가집니다. 이것은 바울의 신학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임한 말씀’입니다. (롬 8:11)은 증거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영광스런 몸의 부활을 확신하며 세상의 썩을 것에 목매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신앙의 눈을 키워야 합니다. 그럴 때 ‘다스리는 영적인 능력’이 생겨납니다. 이런 영적인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다스려 나갈 때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능력을 더해 주실 뿐만 아니라 이길 힘을 주시고, 지혜도 줍니다. 세상의 썩을 것에 목매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신앙의 눈을 부활의 신앙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신앙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의 삶을 자신 있게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6~7) 자신의 삶을 육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따라가지 말고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동여매어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육신의 능력은 유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능력에 있어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육체를 입고 살아가면서 주님을 ‘가시적’으로 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신앙의 모습을 가지지 못한다면 주님과의 교제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6절)의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라!”라는 말씀은 이런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어떻게 교제를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의 어떤 능력으로도 이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됩니다.
‘믿음’ 가운데 ‘신비적 연합’이 일어나고, ‘믿음’ 가운데 주님이 영적으로 보이고, ‘믿음’ 가운데 부활에 따른 소망과 확신이 생겨나고, ‘믿음’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늘로부터 임한 말씀인 (히 10:22)은 증거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리고 (요일 2:13 이하)는 증거합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 자신의 삶을 육신의 눈으로 보면 육신이 가지는 오류와 한계에 빠지게 됩니다. (벧전 4:16)에서도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하며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자”입니다. 자신의 삶을 육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따라가지 말고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동여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값으로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하늘로부터 임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에 참여할 ‘축복된 자들’입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하늘로부터 임한 말씀’입니다. “부활의 확신과 함께 자신이 살아갈 영생, 복락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세상을 패배자의 삶이 아니라 이긴 자의 삶을 살아가라”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썩을 것에 넘어져 절망하는 모습을 거둬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진취적으로 헤쳐 나가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주는 능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자신 있게 가꾸어가는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대로 따라가지 말고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동여매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임한 말씀’입니다. 반드시 임할 종말을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을 맛보도록 이미 이기게 하신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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