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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모임

8월 27일(목요일) - 신앙의 그릇을 키우자(고후 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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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4: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4: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4: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4: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4: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도입)
그릇은 인류의 발달과 함께 참으로 다양한 문화를 이루어가며, 변천사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릇은 용도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성경에도 보면 그릇의 다양성이 신앙의 비유로 소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나무 그릇’, ‘돌 그릇’, ‘질그릇’ 그리고 금속의 발달과 함께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놋 그릇’, ‘은 그릇’, ‘금 그릇’, 지위를 나타내는 ‘상아 그릇’과 ‘옥석 그릇’ 등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 22:24)에 보면 ‘종지’에서부터 ‘항아리’까지 그릇의 종류가 다양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얻게 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배’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연약하여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질그릇’과 같은 존재이지만 보배와도 같은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신앙은 마치 그릇과 같습니다. 내가 어떤 신앙의 모습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내가 어떤 신앙의 그릇이 되어 있느냐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은혜 또한 달라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풍성한 은혜를 맛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신앙의 그릇으로 자신을 만들어가야 할까요?

(7~10)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의 그릇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릇은 담긴 것의 용도에 따라 불리는 이름 또한 달라집니다. 질그릇을 용도에 따라 곡물을 담으면 그 질그릇은 (창 42:25)의 말씀처럼 ‘곡물 그릇’이 됩니다. 그런가 하면 그릇에 소금을 담게 되면 그 그릇이 아무리 ‘금 그릇’이라 할지라도 그 그릇은 (왕하 2:20)의 말씀처럼 ‘질그릇’도, ‘나무 그릇’도, ‘금 그릇’도 아닌 ‘소금 그릇’으로 불립니다. 그 그릇에 무엇이 담기느냐가 중요합니다. 나의 신분이 세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보잘것없는 ‘질 그릇’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나의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나의 가치는 달라집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세상 사람들이 봤을 때 우리는 가치 없어 보이는 질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롬 9:21)에 보니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진흙 한 덩이로 만든 그릇 가운데는 귀하게 쓰기 위해 만든 그릇도 있고, 천하게 쓰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도 있습니다.” 자신이 삶의 환경으로부터 피를 말리는 고통의 ‘우겨쌈’을 당할지라도! ‘답답한 일’을 당할지라도! ‘거꾸러뜨림’을 당할지라도! 이 모든 것들을 이기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으로 자신의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신앙의 ‘질그릇’이 가치 없이 보일지라도 그 그릇을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여 ‘금 그릇’을 만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그릇은 ‘똥 그릇’입니다. ‘그 질그릇’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담으십시오. 그리하면 그 그릇은 더 이상 질그릇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신 주님의 ‘보배로운 그릇’이 됩니다. 삶의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의 그릇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11~12)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신앙의 그릇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바울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역을 펼쳤던 초대교회 때는 그리스도인들이 굶주린 짐승들의 먹이로 던져지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었습니다. 그들의 죄목은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것’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은 곧 자신들이 섬기고 있는 신을 배반하는 행동이었으며, 이것을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바울 또한 여기에 대해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신앙의 그릇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음란과 우상숭배의 도시였던 고린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고, 그 고린도 교회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신앙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12절)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는 신앙의 그릇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간 바울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사망’이 ‘사망’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역사로 나타났다고 증거합니다. 그것이 고린도 교회의 세움과 풍성함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신앙의 그릇으로 만들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인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신앙의 그릇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는 신앙의 그릇으로 자신의 미래를 든든히 만들어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13~15) 최후 승리에 대한 확신의 신앙의 그릇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원동력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최후 승리에 대한 확신은 고난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됩니다. 바울은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라는 (시 116:10)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음 사역으로 당한 고난이 무너짐의 패배가 아니라 결국은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근거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이런 사도 바울의 확신에 찬 고백은 영웅심의 발동이나 공명심에 의한 헛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왜! 확신하는지 거기에 대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14절)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친히 못 박혔을 때 사탄은 자신이 모든 것에 대해 승리한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삼일만에 다시 살아납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통해 고린도 교인들이 넘치는 은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만 있다면 자신은 죽음에 넘겨지는 고난을 오히려 기쁨으로 맞이하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주님처럼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겁니다. 죽음 앞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자,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부활에 대한 소망을 알지 못하니 항상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가진 바울은 부활에 대한 확신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죽음과 고난 앞에 오히려 당당할 수 있었던 겁니다. 부활 신앙이 말하는 것처럼 최후 승리에 대한 확신의 신앙은 자신의 고난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됩니다. 환경에 넘어지지 말고 나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는 신앙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이겨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신앙의 그릇을 키워나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문제는 신앙의 그릇은 종교적인 행위와 같은 형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대한 확신이 그 그릇을 키워간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 신앙’의 확신은 그의 신앙의 그릇을 키워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그릇이 커야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질 은혜가 큽니다. 신앙의 그릇이 종지만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질 은혜가 종지 이상 차질 않게 됩니다.
신앙의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신앙의 그릇을 살아계신 하나님! 부활의 주님! 오늘도 나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하나님!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의 신앙으로 키우십시오! 우리의 생사와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시며, 변함없는 능력으로 오늘도 우리 가운데 임하고 있음을 확신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영생과 복락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확신의 신앙으로 자신의 신앙의 그릇을 키우십시오! 신앙의 그릇의 분량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집니다. 확신의 신앙으로 자신의 신앙의 그릇을 키워나가는 지혜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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