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수요일) -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 일꾼(고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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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도입)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자들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다메섹까지 원정길에 올랐던 그가 예수가 구세주라는 사실을 다메섹에서 알게 됩니다. 다메섹은 바울의 운명을 바꾼 장소가 됩니다. (갈 1:17)과 (18절)에 따르면 이 사건 이후 그는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아라비아 광야로 갑니다. 그곳에서 3년이 넘도록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쓰임을 받습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의 엄격한 교훈을 가르침 받았던 바울이 예수의 증인인 사도가 됩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유대 공회의 입장으로 봤을 때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베뢰아에까지 따라가서 바울이 전하는 진리의 복음에 대해 강력한 훼방꾼들의 역할을 합니다. 심지어 (행 23:12 이하)에 따르면 바울을 암살하기 위해 ‘사십여 명’의 결사대가 조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 일꾼이었던 바울은 어떤 장애 앞에서도 무너짐을 당하지 않습니다. 핍박과 고난이 정면으로 몰아칠수록 그는 더욱 강해집니다. (고후 11:25)에 의하면 죽음에 이르는 ‘태장’을 세 번이나 맞고, 한번을 돌로 맞아 죽음 직전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전도 여행 도중에 세 번이나 ‘파선’하였고 일주일 바다 가운데 표류 된 사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행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서의 사명에 대해 한탄하고, 후회하고, 원망한 사실이 없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 나라 일꾼이 되어야 할까요? 바울은 여기에 대해 어떤 답을 주고 있을까요?
(1~2) 주어진 사명과 사역에 대해 사리와 사욕을 가지지 말고 오직 진리를 드러내는 일에 혼신을 다하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 1:1)을 주목하면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세워진 것에 대해 자신이나 타인이 인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런 자신의 사도의 직분을 가리켜 (고전 3:6)에서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직분을 수행하면서 영적으로 탈진하고, 사람에게 휘둘림을 당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도로 쓰임 받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새 언약’이라는 ‘십자가의 일꾼’이라는 것에 위안을 얻었고, 용기를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자신의 사리와 사욕을 채워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자신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대속을 이룬 형틀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름을 받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도의 직분을 ‘새 언약의 일꾼’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으로 인한 섭섭함과 낙심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사도로서 부족함이 없는 세 가지의 자세로 사역을 감당합니다. 첫 번째는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버립니다. 성적인 문제, 도덕적인 문제, 물질로 인한 문제 등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합니다. 두 번째는 ‘속임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속인다’는 것은 영리하고, 교활하게 행동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이중적인 모습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직을 ‘하나님 앞에서’라는 ‘코람데오’의 모습과 ‘사람의 양심’을 따라 직무를 수행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사역에 대해 어떤 순간도 사리와 사욕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이 땅에 세워졌고, 남겨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과 사역이라는 역할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신앙과 삶이 정직하고, 순수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오직 진리를 드러내는 일에 혼신을 다하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3~5) 영적으로 혼탁함을 이루고 있는 세상 앞에 진리의 본질을 바르게 증거하는 영적인 군사로 쓰임을 받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로서 사역을 감당하던 바울은 온갖 수모를 당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개척했고, 가르쳤던 고린도 교회로부터 수모를 당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의 휘둘림에 교인들이 부화뇌동합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구미에 맞추는 변형된 수단과 방법이 아니라 진리로 정면 돌파하는 사역을 펼쳐갑니다. 복음은 (벧전 5:8)의 말씀처럼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를 대적할 영적인 무기입니다. 이런 복음은 두 기능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는 그를 부르는 ‘계시의 말씀’이요, 그를 죄악으로부터 돌이키는 ‘은혜의 나팔’이 효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한 자들에게는 복음의 어떤 효력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4절)
바울은 마귀를 ‘이 세상의 신’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복음이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광채로 비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매우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식주의’, ‘과학’과 ‘논리’와 ‘집단주의’가 마귀가 발하는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 한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계 13장), ‘열 뿔’과 ‘열 왕관’을 쓴 ‘두 짐승’이 마귀로부터 받은 권세로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종교에 이르기까지 세력을 규합하고, 형성합니다. 영적으로 혼탁함을 이루고 있는 세상 앞에 진리의 본질을 바르게 증거해 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또 다른 바울이라는 영적인 군사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예수를 위해 이 시대 앞에 종으로 쓰임 받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6)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세상 가운데 거침없이 증거해 내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과학과 논리로 증명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 것 또한 논리로써 말할 수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 편에서 그렇게 해석될 뿐입니다. (요 14장)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통한 ‘영적 지각의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영적 지각의 능력’은 사람의 ‘감각 기관’ 또는 사람의 ‘지식의 전달’ 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때 그 마음에 조명되는 은혜의 빛이 ‘영적 지각’입니다. 이 빛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라는 것이 믿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영적 지각의 능력’입니다. “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6절)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의 심령에 ‘영적 직각의 능력’을 발하였을 때 우리는 진리가 믿어지고, 진리에 대해 믿음의 눈이 떠지고, 복음이 들리는 영적인 귀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영적 지각의 능력’이 발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에덴동산’의 네 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명칭만 있는 네 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살아 있는 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또 하나의 ‘영적 지각의 능력’이 발해집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세상 가운데 거침없이 증거해 내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세속에 속한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세속에 속한 사람들처럼 사리와 사욕을 쫓아가며 많은 것, 풍족한 것만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고, 나눔의 자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바울이 사도의 직분을 감당했다면 우리는 이 시대 위에 예수님의 제자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어진 사명과 사역을 감당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이 영적으로 얼마나 혼탁한지 모릅니다. 이것을 탓하는 자는 ‘참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영적으로 읽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지각의 능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영적으로 혼탁함을 이루고 있는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영적 군사로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세상 가운데 거침없이 증거해 내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도입)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자들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다메섹까지 원정길에 올랐던 그가 예수가 구세주라는 사실을 다메섹에서 알게 됩니다. 다메섹은 바울의 운명을 바꾼 장소가 됩니다. (갈 1:17)과 (18절)에 따르면 이 사건 이후 그는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아라비아 광야로 갑니다. 그곳에서 3년이 넘도록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쓰임을 받습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의 엄격한 교훈을 가르침 받았던 바울이 예수의 증인인 사도가 됩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유대 공회의 입장으로 봤을 때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베뢰아에까지 따라가서 바울이 전하는 진리의 복음에 대해 강력한 훼방꾼들의 역할을 합니다. 심지어 (행 23:12 이하)에 따르면 바울을 암살하기 위해 ‘사십여 명’의 결사대가 조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 일꾼이었던 바울은 어떤 장애 앞에서도 무너짐을 당하지 않습니다. 핍박과 고난이 정면으로 몰아칠수록 그는 더욱 강해집니다. (고후 11:25)에 의하면 죽음에 이르는 ‘태장’을 세 번이나 맞고, 한번을 돌로 맞아 죽음 직전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전도 여행 도중에 세 번이나 ‘파선’하였고 일주일 바다 가운데 표류 된 사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행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서의 사명에 대해 한탄하고, 후회하고, 원망한 사실이 없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 나라 일꾼이 되어야 할까요? 바울은 여기에 대해 어떤 답을 주고 있을까요?
(1~2) 주어진 사명과 사역에 대해 사리와 사욕을 가지지 말고 오직 진리를 드러내는 일에 혼신을 다하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 1:1)을 주목하면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세워진 것에 대해 자신이나 타인이 인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런 자신의 사도의 직분을 가리켜 (고전 3:6)에서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직분을 수행하면서 영적으로 탈진하고, 사람에게 휘둘림을 당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도로 쓰임 받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새 언약’이라는 ‘십자가의 일꾼’이라는 것에 위안을 얻었고, 용기를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자신의 사리와 사욕을 채워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자신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대속을 이룬 형틀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름을 받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도의 직분을 ‘새 언약의 일꾼’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으로 인한 섭섭함과 낙심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사도로서 부족함이 없는 세 가지의 자세로 사역을 감당합니다. 첫 번째는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버립니다. 성적인 문제, 도덕적인 문제, 물질로 인한 문제 등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합니다. 두 번째는 ‘속임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속인다’는 것은 영리하고, 교활하게 행동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이중적인 모습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직을 ‘하나님 앞에서’라는 ‘코람데오’의 모습과 ‘사람의 양심’을 따라 직무를 수행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사역에 대해 어떤 순간도 사리와 사욕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이 땅에 세워졌고, 남겨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과 사역이라는 역할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신앙과 삶이 정직하고, 순수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오직 진리를 드러내는 일에 혼신을 다하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3~5) 영적으로 혼탁함을 이루고 있는 세상 앞에 진리의 본질을 바르게 증거하는 영적인 군사로 쓰임을 받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로서 사역을 감당하던 바울은 온갖 수모를 당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개척했고, 가르쳤던 고린도 교회로부터 수모를 당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의 휘둘림에 교인들이 부화뇌동합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구미에 맞추는 변형된 수단과 방법이 아니라 진리로 정면 돌파하는 사역을 펼쳐갑니다. 복음은 (벧전 5:8)의 말씀처럼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를 대적할 영적인 무기입니다. 이런 복음은 두 기능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는 그를 부르는 ‘계시의 말씀’이요, 그를 죄악으로부터 돌이키는 ‘은혜의 나팔’이 효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한 자들에게는 복음의 어떤 효력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4절)
바울은 마귀를 ‘이 세상의 신’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복음이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광채로 비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매우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식주의’, ‘과학’과 ‘논리’와 ‘집단주의’가 마귀가 발하는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 한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계 13장), ‘열 뿔’과 ‘열 왕관’을 쓴 ‘두 짐승’이 마귀로부터 받은 권세로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종교에 이르기까지 세력을 규합하고, 형성합니다. 영적으로 혼탁함을 이루고 있는 세상 앞에 진리의 본질을 바르게 증거해 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또 다른 바울이라는 영적인 군사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예수를 위해 이 시대 앞에 종으로 쓰임 받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6)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세상 가운데 거침없이 증거해 내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과학과 논리로 증명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 것 또한 논리로써 말할 수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 편에서 그렇게 해석될 뿐입니다. (요 14장)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통한 ‘영적 지각의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영적 지각의 능력’은 사람의 ‘감각 기관’ 또는 사람의 ‘지식의 전달’ 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때 그 마음에 조명되는 은혜의 빛이 ‘영적 지각’입니다. 이 빛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라는 것이 믿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영적 지각의 능력’입니다. “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6절)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의 심령에 ‘영적 직각의 능력’을 발하였을 때 우리는 진리가 믿어지고, 진리에 대해 믿음의 눈이 떠지고, 복음이 들리는 영적인 귀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영적 지각의 능력’이 발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에덴동산’의 네 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명칭만 있는 네 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살아 있는 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또 하나의 ‘영적 지각의 능력’이 발해집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세상 가운데 거침없이 증거해 내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세속에 속한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세속에 속한 사람들처럼 사리와 사욕을 쫓아가며 많은 것, 풍족한 것만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고, 나눔의 자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바울이 사도의 직분을 감당했다면 우리는 이 시대 위에 예수님의 제자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어진 사명과 사역을 감당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이 영적으로 얼마나 혼탁한지 모릅니다. 이것을 탓하는 자는 ‘참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영적으로 읽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지각의 능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영적으로 혼탁함을 이루고 있는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영적 군사로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세상 가운데 거침없이 증거해 내는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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