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8일(월요일) -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자(민 4: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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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모세와 아론과 회중의 지도자들이 고핫 자손들을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계수하니
4:35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에서 복무하고 봉사할 모든 자
4:36 곧 그 종족대로 계수된 자가 이천칠백오십 명이니
4:37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회막에서 종사하는 고핫인의 모든 종족 중 계수된 자이니라
4:38 게르손 자손 중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는
4:39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 봉사에 참여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라
4:40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는 이천육백삼십 명이니
4:41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회막에서 종사하는 게르손 자손의 모든 종족 중 계수된 자니라
4:42 므라리 자손의 종족 중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는
4:43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에서 복무하고 봉사할 모든 자라
4:44 그 종족을 따라 계수된 자는 삼천이백 명이니
4:45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므라리 자손들의 종족 중 계수된 자니라
(도입)
이 땅에 속한 모든 사람의 공통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두가 공동체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가장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이라는 공동체와 사회의 공동체, 민족과 나라라는 공동체, 종교의 공동체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동체라는 말을 그대로 빌려서 표현하자면 생활이나 행동함에 있어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 즉, 목적을 같이하는 집단의 형태를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를 제3자의 입장이 되어서 한 번씩 들여다보면 정말로 이 사람들이 함께하는 사람들이 맞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로 세움을 받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영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레위 지파가 하나님께 드려진 지파로 구별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다시 제사장과 레위인의 역할로 나눕니다. 그리고 레위인에 대한 직무를 고핫, 게르손, 므라리 자손으로 구별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방식이 중심을 이룹니다. 민수기 4장은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공동체를 어떤 모습으로 세워나가야 하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어떤 방식으로 세워나가야 할까요?
(34~37)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시내산을 통해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완전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질서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신앙의 영적 터를 세웁니다. 이스라엘의 무리 가운데서 구별한 레위인들을 다시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 자손별로 구분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 (34~45절)은 반복적인 세 문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계수된 자’라는 문장입니다. 두 번째는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라는 문장이며, 세 번째는 ‘명령하신 대로’라는 문장입니다. 계수된 자를 소개할 때 ‘고핫 자손’(34절), ‘게르손 자손’(38절), ‘므라리 자손’(42절)이 순서대로 소개됩니다.
민수기 3장에서 일 개월 이상 된 레위 자손의 남자를 조사할 때는 혈통의 장자인 게르손이 먼저 소개됩니다. 그러나 4장에서는 3장과 달리 차자인 고핫 자손을 먼저 소개합니다. 이유는 성막의 중요성에 의하여 고핫 자손이 먼저 소개되었던 것입니다. ‘지성물’을 운반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그러면 왜! 성막의 가장 중요한 ‘지성물’의 운반을 혈통으로 차자인 고핫 자손이 하게 되었느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37절)은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고핫 자손이 지성물을 맡은 것은 모세와 아론이 속한 자손이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의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이었고,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 또한 우리의 자격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신앙과 삶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38~41)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한마음으로 묶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고핫, 게르손, 므라리 자손을 분리해서 보면 그들은 분명히 셋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들은 ‘셋’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본문 38절)의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하도록 한 것은 신속하고,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한 것은 이런 단순한 기능에 머물지 않습니다. 서로가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서로가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있을 광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강한 개성들을 가진 이스라엘이 아니라 한마음으로 하나가 된 이스라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언약의 공동체로 묶을 때 지파별로 하나가 되게 하고, 열두 지파를 하나로 묶어 이스라엘이 되게 합니다.
거룩한 영적 전투를 위해 레위지파를 하나로 묶습니다.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통해 그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진정으로 한마음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야 할까요? ‘종족과 가문’을 통해 서로가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으로 서로가 ‘한 형제, 한 자매’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한마음으로 묶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내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42~45) 사람이 생각하는 편에서 합당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합당한 방식으로 서로를 하나로 묶어가야 합니다
당시 게르손은 일의 분량이나 그 성격을 봤을 때 충분히 고핫 자손을 향하여 불만을 터트릴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막의 중요한 일을 고핫 자손이 맡은 것은 모세와 아론이 고핫 자손임으로 그 자체를 특혜로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가장 힘든 부분을 맡아 일을 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일 쉬운 일을 하였던 고핫 자손을 향하여 불만을 표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어떤 자손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기가 막힌 합당함이 작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의 ‘언약궤’를 비롯한 성소의 ‘지성물’ 운반을 하나님께서는 왜! 제사장이 속한 고핫 자손에게 맡겼을까요? 그 답은 ‘회막에서 종사하는’(37절)이라는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종사’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그 원형이 ‘아바드’입니다. ‘일하다’, ‘섬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 향하는 것’ 즉 ‘예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성물’을 운반하는 것조차 예배의 연속으로 보고 계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제사장이 속한 고핫 자손이 성소의 ‘지성물’을 운반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성막의 봉사 가운데서도 가장 힘든 일을 므라리 자손으로 하여금 감당하도록 하셨던 것도 (44절 이하)를 보면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종족을 따라 계수했을 때 므라리 자손의 수는 3,200명이었습니다. 고핫 자손은 ‘2,750명’이었으며, 게르손 자손은 ‘2,630명’이었습니다.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기둥을 비롯한 가장 무거운 성막의 기구들을 운반하면서도 그 수가 제일 많았기에 고핫 자손이나 게르손 자손이 하는 일의 양과 거의 비슷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합당하신 분입니다. 성막을 봉사하는 나이에도 하나님의 합당함은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는 남자의 신체와 정신이 가장 성숙한 시점을 ‘30세’로 보고 있었으며, ‘50세 이상’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함에 이르는 나이로 보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 고집과 나의 주관된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합당한 방식을 기준으로 삼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의 방식은 깨어지고, 분열을 일으킵니다. 하나님 편에서 합당한 방식으로 서로를 하나로 묶어나가는 신앙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고핫 자손을 통해서는 모든 것의 시작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게르손 자손을 통해서는 서로 한 마음으로 묶어가는 신앙이 되도록 합니다. 그리고 므라리 자손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합당한 방식으로 서로를 하나로 묶어가는 신앙이 되도록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과 신앙은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은혜의 터 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구원의 책’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합당한 성도’로서 어떻게 이 땅을 살아가야 할지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나침판이요, ‘스승’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거친 광야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광야와 같은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면 길이 있습니다.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사람의 판단과 방식을 앞세워 각각의 모습을 가진 고핫과 게르손, 므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서로를 신앙의 울타리로 묶어가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의 결실을 맺는 은혜의 나무가 되고, 결실의 열매를 맺는 복된 동산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의 방식 안에서 신앙과 삶을 하나로 묶어 은혜의 풍성한 결실을 맺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4:35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에서 복무하고 봉사할 모든 자
4:36 곧 그 종족대로 계수된 자가 이천칠백오십 명이니
4:37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회막에서 종사하는 고핫인의 모든 종족 중 계수된 자이니라
4:38 게르손 자손 중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는
4:39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 봉사에 참여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라
4:40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는 이천육백삼십 명이니
4:41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회막에서 종사하는 게르손 자손의 모든 종족 중 계수된 자니라
4:42 므라리 자손의 종족 중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는
4:43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에서 복무하고 봉사할 모든 자라
4:44 그 종족을 따라 계수된 자는 삼천이백 명이니
4:45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므라리 자손들의 종족 중 계수된 자니라
(도입)
이 땅에 속한 모든 사람의 공통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두가 공동체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가장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이라는 공동체와 사회의 공동체, 민족과 나라라는 공동체, 종교의 공동체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동체라는 말을 그대로 빌려서 표현하자면 생활이나 행동함에 있어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 즉, 목적을 같이하는 집단의 형태를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를 제3자의 입장이 되어서 한 번씩 들여다보면 정말로 이 사람들이 함께하는 사람들이 맞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로 세움을 받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영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레위 지파가 하나님께 드려진 지파로 구별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다시 제사장과 레위인의 역할로 나눕니다. 그리고 레위인에 대한 직무를 고핫, 게르손, 므라리 자손으로 구별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방식이 중심을 이룹니다. 민수기 4장은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공동체를 어떤 모습으로 세워나가야 하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어떤 방식으로 세워나가야 할까요?
(34~37)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시내산을 통해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완전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질서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신앙의 영적 터를 세웁니다. 이스라엘의 무리 가운데서 구별한 레위인들을 다시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 자손별로 구분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 (34~45절)은 반복적인 세 문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계수된 자’라는 문장입니다. 두 번째는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라는 문장이며, 세 번째는 ‘명령하신 대로’라는 문장입니다. 계수된 자를 소개할 때 ‘고핫 자손’(34절), ‘게르손 자손’(38절), ‘므라리 자손’(42절)이 순서대로 소개됩니다.
민수기 3장에서 일 개월 이상 된 레위 자손의 남자를 조사할 때는 혈통의 장자인 게르손이 먼저 소개됩니다. 그러나 4장에서는 3장과 달리 차자인 고핫 자손을 먼저 소개합니다. 이유는 성막의 중요성에 의하여 고핫 자손이 먼저 소개되었던 것입니다. ‘지성물’을 운반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그러면 왜! 성막의 가장 중요한 ‘지성물’의 운반을 혈통으로 차자인 고핫 자손이 하게 되었느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37절)은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고핫 자손이 지성물을 맡은 것은 모세와 아론이 속한 자손이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의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이었고,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 또한 우리의 자격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신앙과 삶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38~41)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한마음으로 묶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고핫, 게르손, 므라리 자손을 분리해서 보면 그들은 분명히 셋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들은 ‘셋’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본문 38절)의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하도록 한 것은 신속하고,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한 것은 이런 단순한 기능에 머물지 않습니다. 서로가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서로가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있을 광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강한 개성들을 가진 이스라엘이 아니라 한마음으로 하나가 된 이스라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언약의 공동체로 묶을 때 지파별로 하나가 되게 하고, 열두 지파를 하나로 묶어 이스라엘이 되게 합니다.
거룩한 영적 전투를 위해 레위지파를 하나로 묶습니다.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통해 그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진정으로 한마음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야 할까요? ‘종족과 가문’을 통해 서로가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으로 서로가 ‘한 형제, 한 자매’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한마음으로 묶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내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42~45) 사람이 생각하는 편에서 합당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합당한 방식으로 서로를 하나로 묶어가야 합니다
당시 게르손은 일의 분량이나 그 성격을 봤을 때 충분히 고핫 자손을 향하여 불만을 터트릴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막의 중요한 일을 고핫 자손이 맡은 것은 모세와 아론이 고핫 자손임으로 그 자체를 특혜로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가장 힘든 부분을 맡아 일을 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일 쉬운 일을 하였던 고핫 자손을 향하여 불만을 표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어떤 자손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기가 막힌 합당함이 작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의 ‘언약궤’를 비롯한 성소의 ‘지성물’ 운반을 하나님께서는 왜! 제사장이 속한 고핫 자손에게 맡겼을까요? 그 답은 ‘회막에서 종사하는’(37절)이라는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종사’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그 원형이 ‘아바드’입니다. ‘일하다’, ‘섬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 향하는 것’ 즉 ‘예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성물’을 운반하는 것조차 예배의 연속으로 보고 계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제사장이 속한 고핫 자손이 성소의 ‘지성물’을 운반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성막의 봉사 가운데서도 가장 힘든 일을 므라리 자손으로 하여금 감당하도록 하셨던 것도 (44절 이하)를 보면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종족을 따라 계수했을 때 므라리 자손의 수는 3,200명이었습니다. 고핫 자손은 ‘2,750명’이었으며, 게르손 자손은 ‘2,630명’이었습니다.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기둥을 비롯한 가장 무거운 성막의 기구들을 운반하면서도 그 수가 제일 많았기에 고핫 자손이나 게르손 자손이 하는 일의 양과 거의 비슷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합당하신 분입니다. 성막을 봉사하는 나이에도 하나님의 합당함은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는 남자의 신체와 정신이 가장 성숙한 시점을 ‘30세’로 보고 있었으며, ‘50세 이상’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함에 이르는 나이로 보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 고집과 나의 주관된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합당한 방식을 기준으로 삼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의 방식은 깨어지고, 분열을 일으킵니다. 하나님 편에서 합당한 방식으로 서로를 하나로 묶어나가는 신앙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고핫 자손을 통해서는 모든 것의 시작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게르손 자손을 통해서는 서로 한 마음으로 묶어가는 신앙이 되도록 합니다. 그리고 므라리 자손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합당한 방식으로 서로를 하나로 묶어가는 신앙이 되도록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과 신앙은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은혜의 터 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구원의 책’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합당한 성도’로서 어떻게 이 땅을 살아가야 할지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나침판이요, ‘스승’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거친 광야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광야와 같은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면 길이 있습니다.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사람의 판단과 방식을 앞세워 각각의 모습을 가진 고핫과 게르손, 므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서로를 신앙의 울타리로 묶어가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의 결실을 맺는 은혜의 나무가 되고, 결실의 열매를 맺는 복된 동산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의 방식 안에서 신앙과 삶을 하나로 묶어 은혜의 풍성한 결실을 맺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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