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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모임

6월 22일(월요일) - 이렇게 기억이 되자(민 32: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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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요셉의 아들 므낫세 반 지파에게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나라와 바산 왕 옥의 나라를 주되 곧 그 땅과 그 경내의 성읍들과 그 성읍들의 사방 땅을 그들에게 주매
32:34 갓 자손은 디본과 아다롯과 아로엘과
32:35 아다롯소반과 야셀과 욕브하와
32:36 벧니므라와 벧하란들의 견고한 성읍을 건축하였고 또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었으며
32:37 르우벤 자손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기랴다임과
32:38 느보와 바알므온들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바꾸었고 또 십마를 건축하고 건축한 성읍들에 새 이름을 주었고
32:39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은 가서 길르앗을 쳐서 빼앗고 거기 있는 아모리인을 쫓아내매
32:40 모세가 길르앗을 므낫세의 아들 마길에게 주매 그가 거기 거주하였고
32:41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가서 그 촌락들을 빼앗고 하봇야일이라 불렀으며
32:42 노바는 가서 그낫과 그 마을들을 빼앗고 자기 이름을 따라서 노바라 불렀더라



(도입)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대한 역사적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지파’ 가운데 ‘반’이 자신들의 ‘가축’과 ‘어린이들’로 인해 요단 동편에 기업주기를 모세에게 간청합니다. 이때 모세를 비롯한 ‘온 회중들’은 ‘두 지파 반’의 요구에 충격을 받습니다. 과거 가데스의 사건을 기억하며 모세는 말합니다. “가나안 땅을 주리라 했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해 불신했던 과거를 기억하느냐!” 여기에 대해 ‘두 지파 반’은 불신이 아니라 ‘가축’과 ‘어린이들’ 문제로 인한 것이며, 자신들에게 ‘요단 동편’을 기업으로 주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기까지 앞장서서 싸울 것과 여기에 대해 생명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얻게 된 ‘두 지파 반’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가나안 정복 전쟁에 임합니다. 이때 자신들이 점령한 곳의 이름을 새롭게 짓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통해 후손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을 기억하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 가운데 그리스도인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이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후손들로부터 어떻게 기억되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33~38) 세속으로 물들어 있는 시대와는 달리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에 걸맞은 공동체를 세워나가며 이 일을 위해 책임을 다한 자로 하나님과 후손들에게 기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요단 동편’에 허락받은 기업은 ‘아모리인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다스리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민 21:21~23), 그리고 (민 21:33~34)에 따르면 ‘시혼’과 ‘옥’이 다스리던 나라는 12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의 능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민 21:34)과 (35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앞세우고 있었던 강력한 세상 나라였던 ‘시혼’과 ‘옥’을 강력하게 물리쳐줍니다. ‘갓 자손’이 비옥한 땅을 마치 이삭을 줍듯이 접수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일을 단행합니다. 첫 번째는 ‘견고한 성읍’을 건축하였으며, 두 번째는 양을 위해 ‘우리’를 짓습니다. 이때 이 두 가지 일은 (35절)의 ‘야셀’이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둘러싸시고 보호하신다”라는 신앙을 전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르우벤 자손’들은 자신들이 앞으로 거처할 성읍들을 건축하고 우상숭배적인 요소와 세속적 의미를 제거한 새 이름을 부여합니다. 특히 ‘르우벤 자손’이 ‘느보’와 ‘바알므온’을 건축한 뒤 “그 이름을 바꿨다”는 것은 우상숭배와 함께 죄악이 가득한 세속의 나라를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이뤄지는 땅으로 바꾸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새 이름을 주었다”는 것은 결단에 따른 선포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리인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판을 치고 있는 세속의 나라를 ‘요단 동편’의 기업처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너는 이 요단 동편의 기업에 대해 어떤 이름을 남기길 원하느냐?” 세속으로 물들어 있는 이 시대 앞에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에 걸맞은 업적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 책임을 다한 자로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과 후손들에게 기억을 남겨야 합니다.

(39~41)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일에 헌신을 다할 뿐만 아니라 우상의 어떤 요소도 용납하지 않은 가운데 후손들에게 기업을 남긴 자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므낫세 지파’ 가운데 ‘요단 동편’에 기업을 하락 받은 ‘반 지파’는 ‘길르앗’을 자신들의 거주지로 삼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모리인들’이 여전히 그곳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므낫세 반 지파’는 이 땅을 개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므낫세 지파’였던 ‘마길의 자손들’은 여기에 대해 환경을 불평하고, 원망하거나 다른 지파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헌신을 다합니다. “길르앗을 쳐서 빼앗고”, “아모리인을 쫓아내며”, “그 촌락들을 빼앗고”는 남의 것에 대해 무력을 앞세워 빼앗았다라는 ‘약육강식’의 죄악 된 강탈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빼앗고”, “쫓아낸” 대상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 그리고 ‘여호와로부터 저주받은 우상숭배자들’을 말하고 있다면, 그들을 쫓아내고 그곳에 거주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최종 승리자가 된 ‘하나님의 백성’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강조되는 것이 있습니다. “빼앗고”, “쫓아낸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마길 자손들’의 헌신 된 발걸음이 있었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그곳이 ‘마길 자손들’의 기업이 되었으며, 이것이 후손들의 기업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을 “쫓아내매”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므낫세의 장자 마길의 후손이었던 ‘야일’은 “하나님께서 일깨우신다”라는 자신의 이름이 담긴 의미를 살리기 위해 그 촌락의 이름을 ‘하봇야일’, 즉, “야일의 촌락”이라는 이름을 지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일에 헌신을 다할 뿐만 아니라 우상의 어떤 요소도 용납하지 않은 가운데 후손들에게 기업을 남긴 자로 하나님과 후손들에게 기억되어야 합니다.

(42) 자신의 이름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참된 일꾼으로 영원히 기억에 남겨져야 합니다

‘요단 동편’에 있는 ‘길르앗’을 기업으로 받은 므낫세의 후손이었던 ‘노바’는 그 이름이 “짖는 소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또한 ‘야일’처럼 헌신 된 자리에 자신을 세웁니다. 자신에게 허락된 ‘그낫과 그 마을’을 통해 큰 공을 세웁니다. 그리고 ‘소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낫’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따라 ‘노바’로 고칩니다. “바알의 소유”라고 부르짖는 우상의 땅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짖는 땅”으로 바꿉니다. ‘므낫세의 후손’이었던 ‘노바’는 자신이 파송 받은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후손들에게 영원히 기억에 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우리를 ‘노바’처럼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노바’처럼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마 28:19)라고 사명을 주셨을 때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추종자를 만들어가는 자 아니라 “하나님을 부르짖는 자들”을 세워나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에 충성된 참된 일꾼의 이름을 하나님은 기억합니다. 뿐만 아니라 충성된 일꾼으로 우리가 사도 바울을 기억하듯 하나님께서는 후손들로 하여금 그 이름을 영원히 기억나게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업적을 남기는 자가 아니라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그 사역에 대해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그 이름이 참된 일꾼이었다고 영원히 기억에 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을 살아가는 성도는 날마다 자신의 삶이 기억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넓혀나가는 삶을 살아가는 자로 기억이 남아야 합니다. 여기서 넓혀나간다는 것은 세속적인 물량의 부피와 수량적인 증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업을 넓혀나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기억이 되고, 믿음의 후손으로부터 기억되는 자로 남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을 어떻게 넓혀나가는 자로 기억되어야 할까요? 먼저 세속으로 물들어 있는 시대 앞에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에 따른 기업을 건설하는 자로,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책임을 다하는 자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내가 속한 삶의 바탕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업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 또한 하나님께서 하락하신 기업입니다. 이런 기업들을 하나님의 공의로 세워나가는 일에 헌신될 뿐만 아니라 건강한 공동체를 믿음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남긴 자로 하나님께, 후손들에게 기억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역들을 “주님이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감당해 나갔다”라는 참된 일꾼으로 영원히 기억에 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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