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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수요일) -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왕하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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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1: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1: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1: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도입)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이뤄놓은 업적을 기반으로 B.C. 970년에 이스라엘의 제3대 통합 왕위에 오릅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 남을 ‘성전’을 최초로 건축합니다. 나라도 부강하게 일으킵니다. 그러나 이런 이스라엘의 역사가 오래가지 못합니다. 솔로몬의 우상숭배는 그 아들 르호보암 때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역사의 오명을 남깁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역사에 불신앙의 대명사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워진 여로보암 1세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남과 북을 영적으로 병들게 만든 아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합 왕의 생명을 길르앗 라못에서 거둬갑니다. 불신앙의 대명사인 아버지 아합, 바알 선지자였던 어머니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의 제8대 왕으로 등극합니다. 그가 역사에 기록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과 무너짐을 당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나라를 영적 흑암으로 이끌었던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바라봅니다. 영적 흑암에 사로잡힌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영적 흑암에 놓인 이 시대 앞에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가져야 할까요?

(1~2) 흑암의 세대로 하여금 만물의 절대 주권자 되시고,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심판과 종말을 바르게 알도록 영적으로 일깨워주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길르앗 라못에서 아합왕은 아람과 전쟁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의 제8대 왕으로 등극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왕이 아합에서 아하시야로 바뀐 것 외에 변화된 것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알 선지자였던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실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북이스라엘의 속국이었던 모압이 배반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향해 경고하는 음성이었습니다. 영적 흑암 가운데 놓여 있던 아하시야는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더 강한 음성으로 그에게 다가갑니다.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집니다. 이 사건으로 치명적인 병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불신앙에 대해 두 번이나 경고의 음성을 들었던 아히시야의 결정은 그 어머니 바알 선지자로부터 가르침 받은 길을 택합니다.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2절)
지금 이 시대는 흑암의 시대입니다. ‘여섯째 인의 재앙’(참고, 계 6:12)이 임하기 전,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경제’의 무너짐, 그리고 강력한 ‘질병’으로 다가올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흑암에 사로잡힌 아하시야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만물의 절대 주권자이자 주관자되시는 하나님께서 ‘전쟁’과 ‘기근’, ‘질병’과 ‘경제’를 통해 심판과 종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흑암 속에 있는 자들이 ‘게걸음’을 치고 있습니다. 흑암의 세대를 향해 종말과 심판을 바르게 알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들을 영적으로 바르게 일깨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3) 흑암의 세대로 하여금 영적 번지수를 바르게 찾아가도록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로 인도하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하시야 왕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흑암 속에서 분별력을 잃어버리니 죽음의 귀로에 놓인 자신이 찾아가야 할 길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생과 사의 주관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아하시야 왕이 자신의 병을 회복 받기 위해 바알 선지자인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알세불’을 찾습니다. 이미 이 사실을 알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보냅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물으러 가느냐!”(3절) 영적 흑암이 그를 덮어버리니 영적 번지수를 바르게 찾지 못합니다.
이 시대 아하시야는 누구입니까? 영적 흑암에 가려 길 잃은 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입니다. 영적 흑암에 가린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을 돌로 쳐죽입니다. 스데반은 마지막 호흡을 멈추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 그는 목숨을 다하는 그 순간도 영적 흑암에 가려 진리를 보지 못하는 ᅟᅵᆼ들을 영적으로 바른길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영적 흑암에 놓인 이 세대로 하여금 영적 번지수를 바르게 찾아가도록 영적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흑암에 놓인 영혼들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로 인도하는 이 시대의 등불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4) 하나님 안에서 해법을 찾도록 그 길을 바르게 제시하는 수고로움을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두 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만든 영적 흑암은 무서운 결과를 낳습니다. 그 결과는 자신의 모든 영광에 대해 끝을 맺는 ‘죽음’이었습니다. 주님이 ‘심판의 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시기까지 사람의 ‘죽음’은 두 가지로 그 성격이 구분됩니다. 불신자들에게 죽음은 ‘영원한 형벌’(살후 1:9)이 됩니다. 이들에게는 ‘둘째 사망’(계 21:8)이 기다려질 뿐입니다. 반면 신자들에게는 ‘죽음’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을 기다리는 모습이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눅 23:43) ‘낙원’에 이르게 됩니다. 영적 흑암에 가리니 문제를 어디서 해결 받아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여호와를 향해 살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둘째 사망’에 이르게 하는 ‘바알세불’을 찾아갑니다.
이 시대의 ‘문화’와 ‘정치’, ‘사회의 형틀’을 돌아보면 ‘둘째 사망’이 기다려지는 ‘바알세불’을 향해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세상은 꺼진 등불의 모습을 하면서 ‘바알세불’을 향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을 입으로만, 마음으로만 사역하는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친히, 몸소 실천해 나가는 일에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처럼 하나님 안에서 해법을 찾도록 그 길을 바르게 제시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하나요?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이 사명의 깃발을 힘 있게 세워나가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똬리를 틀고 있는 이 시대는 다양한 모습으로 교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와 이 시절을 통해 직시해야 합니다. 적그리스도 세력이 정치, 경제, 군사, 사회, 종교 등을 통해 그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뭄과 질병, 전쟁, 환경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종말의 날’을 예고하는 ‘종말의 때’의 현상입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세상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영적 흑암의 결과입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엘리야처럼, 사도 바울처럼 이 시대 앞에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 내놓아야 합니다. 곧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영적 흑암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 수고로움을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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