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2일(주일) ~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한복음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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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로부터 다급한 전갈을 받습니다. "사랑하시는"자의 고통이니, 다급히 길을 재촉하실 예수님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리어 이틀을 더 유하시며 때를 살피십니다. 치유의 기적도 사랑을 베풂도 철저히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달려있음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침묵과 지체가 때로 고통을 주지만, 그것은 결코 그분의 무관심이나 무능이 아니며, 결국에는 더 나은 차원의 응답이 될것입니다.
다시 유대로 가는 것은 죽음을 향한 무모한 걸음이라고 제자들이 만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빛 안에 있는 자는 넘어지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하시며 길을 떠나십니다. 제자들은 그 걸음이 죽은 나사로의 소생을 넘어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큰 행보임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잠"에 비유하십니다. 이것은 죽음 앞에 선 사람의 무력함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죽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은유를 사용하신 것도 아닙니다(왕상11:43). 죽음을 "잠"에 비유하신 까닭은 "깨어님"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안에서 우리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깨어남, 곧 부활의 서곡임을 고백합니다.
다시 유대로 가는 것은 죽음을 향한 무모한 걸음이라고 제자들이 만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빛 안에 있는 자는 넘어지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하시며 길을 떠나십니다. 제자들은 그 걸음이 죽은 나사로의 소생을 넘어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큰 행보임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잠"에 비유하십니다. 이것은 죽음 앞에 선 사람의 무력함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죽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은유를 사용하신 것도 아닙니다(왕상11:43). 죽음을 "잠"에 비유하신 까닭은 "깨어님"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안에서 우리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깨어남, 곧 부활의 서곡임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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