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훈련

홈 | 양육/훈련

Q.T 모임

10월15일(수요일) - 채워주는 우물 같은 성도(렘14:1-6)

페이지 정보

작성자관리자

본문

(도입)
사람을 비롯한 생명을 가진 생물체는 물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생명체의 주변에는 항상 물이 마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물이 항상 그 주변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태양의 뜨거운 열기와 가뭄으로 인해 물이 말라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물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고갈되기도 합니다. 이런 역경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개발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우물입니다. 우물은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우물은 인류의 발전사와 함께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맥을 이어왔습니다. 그 우물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우물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에 따라 우물의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했습니다.
창세기 26장, 이삭의 시대를 예를 들어 보면 ‘다툼’이라는 뜻을 가진 ‘에섹’과 ‘대적하다’는 뜻을 가진 ‘싯나’가 있었는가 하면 ‘장소가 넓다’라는 의미를 가진 ‘르호봇’이란 우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공급하고,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한, 우물은 자신을 비워 주변을 그리고 상대를 살리고, 유익을 주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세상은 사악한 것에 사로잡혀 영.육간에 가뭄을 맞이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삶은 여유가 없고, 강퍅하고 험악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영적 가뭄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우물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갈급한 세상을 향해 어떤 우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요?

(1~2) 하나님 앞에 교만한 모습을 하며, 자신의 잘난 모습으로 살아가는 빈 그릇과 같은 모순된 이 시대를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영의 양식으로 채우는 우물과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큰 위기를 맞이합니다. 때는 B.C. 609~598년입니다. 유다 제18대 왕인 여호와김이 나라를 다스릴 때입니다. 심각한 가뭄으로 나라에 중차대한 사건이 발생할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언합니다. 가뭄은 크게 두 가지로 그 성격이 구별됩니다. 첫 번째는 계절과 같은 자연적인 현상을 통한 가뭄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징계의 성격을 가진 가뭄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성격을 가진 가뭄은 일반적인 가뭄과 성격이 다릅니다. (왕상 17:1)에 보면 당시 북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아합왕의 죄와 우상숭배는 하나님으로부터 3년 6개월 동안, 비와 이슬을 멈추게 하는 중대한 징계를 받습니다. 가뭄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가뭄이라는 징계의 수단을 사용하셨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향해 교만을 떨고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돌아보도록 하기 위해 이 징계를 택합니다. 두 번째는 진정한 복은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이 징계를 택합니다.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피곤하여 땅 위에서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로 오르도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한순간이라도 멈춰버리면 자신들이 자랑삼았던 예루살렘과 같은 장소가 ‘슬픈 장소’가 되고, ‘애통하는 장소’가 되며, ‘절규하는 장소’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채워주셔야 하는 ‘빈 그릇’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빈 그릇과 같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르게 알도록 영의 양식으로 빈 그릇을 채워주는 우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3~4) 말씀이 기갈한 세상을 향해 생명수의 말씀을 흘려보내며 영적 빈 그릇을 채워주는 우물과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교만함과 불신앙의 징계로 말미암은 가뭄을 알지 못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왕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각가지 방법들을 동원합니다.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사환들을 총동원하여 물이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져봅니다. 심지어 새로운 우물도 파봅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빈 그릇’뿐이었습니다. 그 어디에도 자신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을 찾다가 ‘빈 그릇’으로 돌아온 그들의 모습은 전쟁에서 철저히 패배를 당한 패잔병의 모습보다 더 비참했습니다. “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얻으려 하였으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들의 머리를 가리며” 상황이 절박하게 흘러갑니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극도의 슬픔과 좌절에 사로잡힙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 근원을 찾아야 실마리가 풀립니다. 이스라엘의 근원은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눈물과 애통의 근원이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부터였다면 모든 것의 회복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그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이 영적으로 기갈한 시대에 놓여 있습니다. 말씀이 기갈하여 영적으로 빈 그릇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인 생명수의 말씀으로 그들을 채워줘야 합니다. 불쌍한 영혼들의 ‘빈 그릇’을 악한 것들이 채우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인 생수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채워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영적 빈 그릇을 하나님의 생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주는 우물과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5~6) 썩은 것들로 가득 채워진 허망한 세상을 하나님의 풍성한 결실로 바꾸어놓는 일에 공급원이 되도록 자기를 영적으로 채우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은 우물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야김 왕의 시대에 펼쳐진 역사적인 대 가뭄은 갈증과 배고픔을 갈 견디기로 소문난 ‘들 나귀들’조차 의식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산 소망을 잃어버린 백성들은 통곡할 기력조차 없습니다. 세상을 살리는 우물과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깊은 수로와 연결되어 있는 우물이 되어야 합니다. 가뭄으로 인해 죽음의 그늘이 세상을 덮을 때도 깊은 물의 근원인 수로와 연결이 되어 있는 우물은 메마르지 않습니다. 세상이 죽어서 썩은 것들로 가득 찼을 때도 그 우물의 주변은 항상 살아 있는 생명들로 가득하며, 풍성한 결실의 열매가 함께 합니다.
허망한 세상을 하나님의 풍성한 결실로 바꾸어놓는 일에 공급원이 되는 우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깊은 말씀의 수로에 신앙이 젖어 있어야 합니다. 얕은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으로는 사악한 영적 가뭄의 시대를 이기지 못합니다. 뿌리 깊은 말씀의 신앙으로 자신을 먼저 채우는 우물이 되어야 합니다. (잠 18:4)은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마르지 않는 깊은 물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허망한 세상을 하나님의 풍성한 결실로 바꾸어놓는 일에 공급원이 되도록 자기를 영적으로 채우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은 우물과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하여 빈 그릇과 같은 세상, 말씀이 기갈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영적 가뭄 가운데 놓인 세상, 영적으로 죽어 썩은 것들로 가득 채워진 세상, 이런 세상을 향해 우리는 채워주는 우물이 되어야 합니다. (요 4:14),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예수님의 생명수의 말씀으로 세상을 채워주는 우물과도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마르지 않고, 다른 사람도 채워주는 우물이 됩니다. 이런 우물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더 높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오시는 길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반로 113-15(재송2동 1060-2)

교회 전화

051-783-9191

온라인 헌금안내

BNK 부산 101-2031-9259-04
예금주 : 그리심교회

우체국예금 601252-01-002425
예금주 : 그리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