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4일(금요일) - 일어서라! 가라! 선포하라!(욘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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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4: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도입)
이 땅의 피조물들은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도망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스불론 지파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아밋대였습니다. 그는 갈릴리 지역의 가드헤벨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의 강력한 통치자 여로보암 2세가 나라를 다스릴 때 하나님으로부터 이방인의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비둘기’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요나! 그는 하나님께서 악독으로 가득한 이방인의 한 성읍을 구원하시고자 할 때 자기 편견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향해 반기를 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으로 응답합니다. 그런 요나는 만신창이가 됩니다. 자기 편견과 불순종에 사로잡힌 요나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요나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1~2) 하나님께서는 자기 편견에 사로잡힌 요나와 같은 자를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사용합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맛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건짐을 받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외에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선민우월주의’와 ‘국주수의’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런 요나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임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욘 3:1)라는 말씀은 하나님 앞에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할 자는 니느웨 사람이 아니라 자기 편견에 사로잡힌 요나 자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역에 앞서서 요나에게 3가지의 명령을 내립니다. “일어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각오를 새롭게 다지도록 합니다. 두 번째는 “가라!”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로 순종하고 복종하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세 번째로 ‘선포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처럼 우리를 향해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편견에 사로잡혀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니느웨를 향하여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선포해야 합니다!” 가장 복된 자는 편견에 사로잡혀 자신의 꿈을 꾸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 받는 자입니다. 자기 편견에 넘어져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3~8) 하나님께서는 자기 편견으로 일하는 자의 편견을 깨뜨려 하나님 나라의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깨닫게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사명을 부여잡고 니느웨로 갑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보다 4배나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12만 이 거주하는 니느웨에 도착합니다. 니느웨는 직경이 약 30Km였으며 둘레는 약 95Km로, 사흘 정도는 걸어야 하는 큰 성읍이었습니다. 요나는 그곳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회개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요나의 마음은 여전히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임박한 심판과 회개의 복음을 외치는 요나의 발걸음이 사흘이 아니라 하룻길을 향합니다. 요나는 깜짝 놀랍니다. 이스라엘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대국민 각성운동’이 이방인들에게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니느웨 왕은 온 나라에 왕명을 내립니다. “모든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라!”
왕은 3가지의 명을 내립니다. 첫째,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 목숨을 걸고 회개하라고 명합니다. 둘째, ‘짐승들까지도 베옷을 입혀라!’ 철저하게 회개하도록 합니다. 셋째, ‘부르짖으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 철저히 낮은 자세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심판을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도록 합니다. 요나의 마음은 하나님의 의지와는 달랐습니다. 니느웨의 멸망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요나의 편견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편견을 깨뜨리고 니느웨와 같은 철옹성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의 편견을 깨뜨린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전합시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과 같은 곳을 무너뜨려 주실 것입니다. 일어납시다! 증거합시다! 니느웨와 같은 곳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전히 뒤덮어야 합니다.
(9~10)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의 구원을 통해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자에게 누가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지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니느웨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곳에 내리려고 했던 모든 재앙을 거두어버립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10) 종말은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기 전 심판에 대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것을 ‘은혜의 때’라고 말합니다. ‘은혜의 때’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처럼 ‘즉시’ 회개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편견과 판단으로 이 민족을 방치하게 된다면 한국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히 그 책임을 묻게 됩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그리고 청년이 일어나야 합니다!”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민족을 향해 새벽을 깨우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요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요나서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요나와도 같은 자도 사용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10)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참 회개자’ 한 명은 천하보다도 귀합니다. 이 일을 누가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명합니다. “일어나라! 바로! 네가 이 일을 감당하리라!”
(적용)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요나처럼 (눅 14:12~14)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청하지 말아야 할 4가지와 청해 할 4가지에 대하여 말씀을 줍니다. “너는 벗(첫째)이나 형제(둘째)나 친척(셋째)이나 부한 자(넷째)를 청하지 말라” “차라리 너는 가난한 자(첫째)와 몸 불편한 자(둘째) 그리고 저는 자(셋째)와 맹인과 같은 자(넷째)를 청하는 자가 되어라!” 교회는 기댈 언덕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집합체인 유형 교회와 믿음 가운데 세워진 유형교회(성도들)가 있습니다.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크(ἐκ)= 밖으로(from, out of)’와 ‘칼레오(καλέω)= 부르다(to call)’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밖으로 불러내어진 사람들”입니다. 즉 “부름받아 모인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지상대위임령입니다. “가서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끝날까지”(마 28:19~20) 그리고 편견을 가지지 말고 행하도록 합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일어나야 합니다! 가야 합니다!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이 시대 가운데 새워졌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4: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도입)
이 땅의 피조물들은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도망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스불론 지파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아밋대였습니다. 그는 갈릴리 지역의 가드헤벨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의 강력한 통치자 여로보암 2세가 나라를 다스릴 때 하나님으로부터 이방인의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비둘기’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요나! 그는 하나님께서 악독으로 가득한 이방인의 한 성읍을 구원하시고자 할 때 자기 편견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향해 반기를 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으로 응답합니다. 그런 요나는 만신창이가 됩니다. 자기 편견과 불순종에 사로잡힌 요나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요나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1~2) 하나님께서는 자기 편견에 사로잡힌 요나와 같은 자를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사용합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맛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건짐을 받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외에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선민우월주의’와 ‘국주수의’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런 요나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임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욘 3:1)라는 말씀은 하나님 앞에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할 자는 니느웨 사람이 아니라 자기 편견에 사로잡힌 요나 자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역에 앞서서 요나에게 3가지의 명령을 내립니다. “일어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각오를 새롭게 다지도록 합니다. 두 번째는 “가라!”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로 순종하고 복종하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세 번째로 ‘선포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처럼 우리를 향해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편견에 사로잡혀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니느웨를 향하여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선포해야 합니다!” 가장 복된 자는 편견에 사로잡혀 자신의 꿈을 꾸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 받는 자입니다. 자기 편견에 넘어져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3~8) 하나님께서는 자기 편견으로 일하는 자의 편견을 깨뜨려 하나님 나라의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깨닫게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사명을 부여잡고 니느웨로 갑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보다 4배나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12만 이 거주하는 니느웨에 도착합니다. 니느웨는 직경이 약 30Km였으며 둘레는 약 95Km로, 사흘 정도는 걸어야 하는 큰 성읍이었습니다. 요나는 그곳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회개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요나의 마음은 여전히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임박한 심판과 회개의 복음을 외치는 요나의 발걸음이 사흘이 아니라 하룻길을 향합니다. 요나는 깜짝 놀랍니다. 이스라엘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대국민 각성운동’이 이방인들에게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니느웨 왕은 온 나라에 왕명을 내립니다. “모든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라!”
왕은 3가지의 명을 내립니다. 첫째,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 목숨을 걸고 회개하라고 명합니다. 둘째, ‘짐승들까지도 베옷을 입혀라!’ 철저하게 회개하도록 합니다. 셋째, ‘부르짖으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 철저히 낮은 자세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심판을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도록 합니다. 요나의 마음은 하나님의 의지와는 달랐습니다. 니느웨의 멸망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요나의 편견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편견을 깨뜨리고 니느웨와 같은 철옹성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의 편견을 깨뜨린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전합시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과 같은 곳을 무너뜨려 주실 것입니다. 일어납시다! 증거합시다! 니느웨와 같은 곳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전히 뒤덮어야 합니다.
(9~10)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의 구원을 통해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자에게 누가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지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니느웨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곳에 내리려고 했던 모든 재앙을 거두어버립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10) 종말은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기 전 심판에 대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것을 ‘은혜의 때’라고 말합니다. ‘은혜의 때’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처럼 ‘즉시’ 회개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편견과 판단으로 이 민족을 방치하게 된다면 한국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히 그 책임을 묻게 됩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그리고 청년이 일어나야 합니다!”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민족을 향해 새벽을 깨우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요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요나서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요나와도 같은 자도 사용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10)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참 회개자’ 한 명은 천하보다도 귀합니다. 이 일을 누가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명합니다. “일어나라! 바로! 네가 이 일을 감당하리라!”
(적용)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요나처럼 (눅 14:12~14)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청하지 말아야 할 4가지와 청해 할 4가지에 대하여 말씀을 줍니다. “너는 벗(첫째)이나 형제(둘째)나 친척(셋째)이나 부한 자(넷째)를 청하지 말라” “차라리 너는 가난한 자(첫째)와 몸 불편한 자(둘째) 그리고 저는 자(셋째)와 맹인과 같은 자(넷째)를 청하는 자가 되어라!” 교회는 기댈 언덕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집합체인 유형 교회와 믿음 가운데 세워진 유형교회(성도들)가 있습니다.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크(ἐκ)= 밖으로(from, out of)’와 ‘칼레오(καλέω)= 부르다(to call)’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밖으로 불러내어진 사람들”입니다. 즉 “부름받아 모인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지상대위임령입니다. “가서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끝날까지”(마 28:19~20) 그리고 편견을 가지지 말고 행하도록 합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일어나야 합니다! 가야 합니다!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이 시대 가운데 새워졌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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