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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1일(화요일) - 하나님의 말씀(욘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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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도입)
요나는 실존 인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스불론 지파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아밋대였습니다. 이런 요나의 것으로 여겨지는 무덤이 지금 이라크 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 출신이었던 그는 B.C. 793년경부터 B.C. 753년까지 약 40년간 선지자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강력한 통치자 여로보암 2세가 나라를 다스릴 때 주로 활동하였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중요한 사명을 부여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하거나 빼지 않고, 그 사실만을 전해야 합니다. 그 속에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섞여도 안 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권위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권위와 권세를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반응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은 왕의 권위를 가진 살아있는 말씀이며, 우리는 그 말씀에 대해 저울질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종의 걸음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비둘기’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요나에게 임합니다. 요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왕으로서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라는 말씀은 요나는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살아계신 능력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나로 하여금 능력의 말씀을 붙드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세 번째는 ‘이르시되’입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이르시되’는 하나님께서 방향을 설정한 대로 요나는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순종에 대한 명령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뜻을 이루기 위해 시대마다 자신의 종을 부릅니다. 에녹을 부르시고, 노아를 부르시고, 모세를 부르시고, 예레미야를 부르신 것처럼 그 시대에 필요한 일꾼들을 왕의 권위로서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으로 부르실 때 왕의 권위로 요나를 부르듯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고 부르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왕의 권위를 가진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는 그 말씀에 대해 저울질하고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백성 된 자로서 순종하는 종의 걸음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명에 대해 신앙으로 반응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걸음으로 반응하는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선지자이면서 동시에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요나는 두 가지의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첫 번째는 이방인의 땅인 ‘니느웨’에 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은 그곳에서 심판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요나로 하여금 “너는 나의 말을 전하기 위해 너의 몸을 움직여 나아가라!”라는 강력한 명령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의 마음을 매우 무겁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요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의 커다란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유대 땅이 아니라 이방인의 땅인 ‘니느웨’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이 명령은 요나로 하여금 “너는 음부로 내려가라!”라는 말씀과 같았습니다.
두 번째는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쳐라는 것입니다. 심판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는 니느웨를 회개시킬 것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이 새겨 있다는 것을 요나는 알게 됩니다. ‘선민우월사상’으로 똘똘 뭉쳐있던 요나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생깁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명한 것에 대해 잘못된 ‘선민우월사상’으로 반응합니다. 신앙으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피조 한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에 대해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 자신의 판단과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반드시 신앙으로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걸음으로 반응하는 종의 자세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판단하는 자는 패망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사고와 자기 사상으로 똘똘 뭉쳐있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그의 반응은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거절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반응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이방인을 회개시키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반응은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여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기 위해 니느웨의 정반대 방향으로 달아납니다. 요나의 완전한 불순종은 욥바의 항구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라타는 것으로 그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을 향한 욥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했는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는 그의 행위가 두 번이나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내려갔더니” 그리고 “배에 올랐더라”라는 말씀은 이방인이 회개하는 것보다 불순종의 길을 택하여 이방인의 회개를 막는 것에 자신을 던졌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거하지 않고 하나님과 거리를 두기 위해 요나처럼 다시스를 향하는 자는 스스로 패망의 구덩이를 향하여 달려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며, 판단하여 행동하는 자는 패망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과 동일하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요나는 이방인의 회개를 막기 위해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갔을 때,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스스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의 본체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충분히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고, 정리하고, 판단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권세를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단순한 ‘복종’이라는 기계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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