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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목요일) -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자세(고전 10:2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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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10: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10: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10: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10: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10: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도입)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가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교회는 당파로 갈라져 서로 분쟁을 일삼고 있었으며, 성적 부도덕을 비롯한 교회 내의 타락상은 극에 달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는 헬라 문화의 특칭들이 교회 내에 밀고 들어와 극도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죄인지, 죄에 대해 마비 상태에 놓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개척하였던 교회 가운데 가장 문제가 많고, 말썽이 많은 교회를 손꼽으라고 한다면 고린도 교회가 단연코 금메달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린도 교회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로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헬라의 이교적 관습에 따르면 우상 앞에 제사를 드린 후 그 제물을 섭취하는 것은 곧 그 우상과 연합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 있었던 고린도 교인들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우상 제사와 관련된 음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문제는 고린도 교회에 한정된 문제만이 아닙니다. 신앙생활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상 제사와 우상의 제단으로부터 흘러나온 음식이 자신 앞에 놓여 있다면 여기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바울은 여기에 대해 어떤 답을 주고 있을까요?

(23~24)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돌아보는 자가 아니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덕을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행위에 따른 책임도 그에게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23절) 당시 고린도 교회는 우상 제사와 함께 우상의 제물에 관한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었습니다. 교인 가운데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남달리 앞선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상과 우상의 제사에 대해 우상은 허상이니 우상의 제사는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교인들을 가르치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가르침과 주장은 아주 정확합니다. 그러나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우상 제사에 참여하는 것을 하나의 사회적 활동으로 여기고 신전 행사에 적극 참여하게 됩니다. 이들의 행동을 지켜본 믿음이 연약한 교인들은 시험에 빠집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말합니다.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21절)
자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시험에 빠뜨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유익보다 타인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며, 자신의 유익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전도에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비록 자신이 행하는 일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다른 성도들을 실족시키는 일은 금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발걸음은 상대의 필요를 아는 발걸음이 되어야 하며,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에 덕이 되지 않는 것은 비록 자신에게 유익이 될지라도 금하는, 덕을 세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5~29)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누릴 권리와 자유를 절제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마음껏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지나쳐 방종에 이른다든지, 공동체를 힘들게 하는 경우 자신의 누리는 것을 절제하는 성숙된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은 10여 곳에 이르는 우상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신전에는 제물로 받쳐진 제물들이 차고 흘러넘쳤습니다. 신전의 제사장들은 많은 양의 고기들을 지체할 수 없어서 이것을 시장에 다시 되파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신전에서 싸게 팔린 고기는 일반고기와 뒤섞여 사람들에게 팔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에게 질의를 합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 고기를 사 먹어야 합니까? 아니면 아예 고기를 사 먹지 말아야 합니까?” 바울은 이렇게 답을 줍니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25절)
이 땅에 있는 음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거리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먹는 음식은 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불신자들이 식사에 초청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대하여 거리낌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먹는 목적이 우상과 교제의 성격을 분명히 가진다면 신앙의 양심으로 그 음식을 먹으면 안 됩니다. 자신을 초청한 이교도 주인이나 믿음이 연약한 자가 이 음식의 출처가 우상의 제물임을 명백히 밝혔을 때는 그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봄으로써 형제들이 실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자신의 자유가 제한을 받는 것으로 여기고 불평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신앙을 바르게 세우기 위해 자신이 누릴 권리와 자유를 절제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30~11:1)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신앙과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과 절제를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기 전에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자신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덕을 세우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신앙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죄인의 몸으로 감히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은 죄악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31절) 그리스도인은 먹는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이 처한 삶의 전 영역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에 관한 자신의 얕은 지식으로 상대를 짓누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근본 되는 목적은 첫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둘째, 영원토록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갖추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를 본받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말은 자기 스스로의 십자가를 지는 자가 되어라는 말입니다. 자신을 자랑으로 일삼는 교만한 자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헐벗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의 편이 되어주고 그들을 내 몸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보는 자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는 자신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도 복음의 산증인이 되어 달려가는 자입니다.

(적용)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대원칙을 두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대원칙을 어떻게 해서 이룰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어 이 일들을 이루어가는 자가 되라고 답을 줍니다. ‘십자가의 삶’입니다. ‘십자가의 삶’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유익보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덕을 세우는 자가 되도록 만들어 갑니다. 희생과 절제 그리고 사랑이 어우러진 ‘십자가의 삶’은 자신이 누릴 권리와 자유를 절제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의 힘을 만들어줍니다.
‘십자가의 삶’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신앙으로 그 모습을 나타나게 합니다. ‘십자가’는 세상 가운데 지쳐있는 자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신앙과 인생살이가 폭풍 속에 놓인 배와 같은 자에게는 등대와 같고 항구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십자가의 삶’만이 이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진실 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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