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2일(월요일) -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계획(왕상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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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12 이제 내게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하소서
1:13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여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이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1:14 당신이 거기서 왕과 말씀하실 때에 나도 뒤이어 들어가서 당신의 말씀을 확증하리이다
1:15 밧세바가 이에 침실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니 왕이 심히 늙었으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중들었더라
1:16 밧세바가 몸을 굽혀 왕께 절하니 왕이 이르되 어찌 됨이냐
1:17 그가 왕께 대답하되 내 주여 왕이 전에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여종에게 맹세하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거늘
1:18 이제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도 내 주 왕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19 그가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사령관 요압을 청하였으나 왕의 종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20 내 주 왕이여 온 이스라엘이 왕에게 다 주목하고 누가 내 주 왕을 이어 그 왕위에 앉을지를 공포하시기를 기다리나이다
1:21 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
(도입)
과거의 역사나 현재의 역사나 할 것 없이 변하지 않는 대표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권과 권력 장악을 위한 인간의 불꽃같은 야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권력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는 꽃과 같아서 왕성할 때가 있는가 하면 시들 때가 있습니다. 한때는 천하를 호령하였던 다윗조차도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카이로스라는 특별한 시간 속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다윗의 노쇠함은 세월의 흐름 앞에 다윗이 늙었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노쇠함은 권력에 눈이 어두운 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당사자인 다윗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솔로몬이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란 것을 천명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노쇠함을 틈타 그의 허를 찌르며 선수를 치고 나온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다윗의 네 번째 아들인 아도니야였습니다. 아도니야는 서열로 따지자면 이미 죽은 세 형들인 암논과 길르압 그리고 압살롬에 이어 4위에 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세 형이 모두 죽은 현시점에서 서열 1위는 당연히 아도니야였습니다. 세 형들이 모두 사라지고 아버지 다윗마저 늙어 기력이 쇠해지자 국정에는 공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왕위의 계승 문제에 있어서 아도니야의 행위가 왕위의 찬탈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주요한 기준점은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한 개인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니 왕위에 세워질 자의 기준점 또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한 자’가 충족의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도니야의 인위적인 불손한 행위를 저지하기 위하여 두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한 사람은 이 문제를 핵심적으로 풀어갈 나단 선지자였으며 보조적인 중간 역할자로서 밧세바를 등장시킵니다.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도니야의 오만방자한 불손한 행위를 저지시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아도니야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하셨으며, 그 조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을까요?
(11~14) 하나님의 뜻을 지혜롭게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도니야의 음모가 공개적으로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기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정권의 실세들은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다윗 편에 서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권 이양에 관한 문제가 음모자들에 의하여 음밀하고, 정확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때 나단은 중요한 선택을 합니다. 첫 번째는 아도니야의 반역에 대한 사실을 다윗의 아내요, 솔로몬의 어머니인 밧세바에게 알리는 것이며, 두 번째는 밧세바로 하여금 이 사실을 다윗에게 알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신이 밧세바의 뒤를 이어 다윗에게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에 따른 충고를 통해 다윗으로 하여금 최후의 결단을 내리도록 계획합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죄악을 은폐하려 했을 때 지혜로운 비유를 통해 다윗의 위선과 허위를 폭로했던 선지자입니다.
나단은 밧세바를 통해 다윗으로 하여금 ‘언약적인 관점’에서 아도니야의 문제에 접근하도록 만듭니다. 이때 하나님의 뜻을 아주 지혜롭게 전하도록 합니다. “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여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이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13절) 나단 선지자는 밧세바로 하여금 왕에게 예의를 다 갖추어 왕의 심정이 상하지 않도록 겸손하게 왕에게 나아가도록 합니다. 그리고 다윗 왕으로 하여금 자신이 명세했던 것을 생각나도록 만듭니다. 그런 후, 자신이 왕을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왕으로 하여금 자신이 행할 맹세를 확증하도록 계획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위치에 서 있는 주님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입니다. 아도니야처럼 자신의 뜻을 세우려고 하다가 하나님 나라 일에 역행하는 자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나단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뜻이 잘 이행되도록 돕는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대의명분’과 ‘실리’가 앞장을 서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나단 선지자처럼 하나님 편에서 이 일들을 어떻게 이루어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지혜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5~21)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신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밧세바는 나단 선지자의 조언과 충고를 충실히 이행합니다. 밧세바는 다윗에게 아도니야의 음모를 알립니다. “이제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도 내 주 왕은 알지 못하나이다”(18절) “왕이 되었어도” 밧세바는 아도니야를 ‘왕 앞에 불법한 자’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주 왕은 알지 못하나이다”를 통해 다윗 왕으로 하여금 자신의 왕권을 발동시키도록 합니다. 다윗 왕의 왕권 누수 현상을 솔로몬을 통하여 막도록 기가 막힌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문제가 속히 해결되지 않았다면 다윗이 죽은 후 아도니야의 세력에 의해 자신과 솔로몬에게 기다려지는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으로 하여금 빠른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21절)
밧세바가 이렇게 담대하게 나단 선지자의 뜻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언약적 관점’을 이루려는 나단 선지자에 대한 신뢰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기에 처할 때 내 고집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자가 되십시오. 그 말씀에 의지하여 담대하게 나아가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신뢰하고 나아가는 자를 통해 그 뜻을 반드시 이루어갑니다.
(적용)
세상의 야망과 계교 앞에 우리는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나의 능력과 힘은 오히려 더 큰 분쟁을 일으키는 소재를 재공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는 것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향하여 변치 아니하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어떠한 세력도 하나님의 이 뜻을 변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계획은 오늘도 우리에게 유효하게 작동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약속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언약을 이루심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속화된 세상의 아도니야에게 줄 서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나 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1:12 이제 내게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하소서
1:13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여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이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1:14 당신이 거기서 왕과 말씀하실 때에 나도 뒤이어 들어가서 당신의 말씀을 확증하리이다
1:15 밧세바가 이에 침실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니 왕이 심히 늙었으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중들었더라
1:16 밧세바가 몸을 굽혀 왕께 절하니 왕이 이르되 어찌 됨이냐
1:17 그가 왕께 대답하되 내 주여 왕이 전에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여종에게 맹세하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거늘
1:18 이제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도 내 주 왕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19 그가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사령관 요압을 청하였으나 왕의 종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20 내 주 왕이여 온 이스라엘이 왕에게 다 주목하고 누가 내 주 왕을 이어 그 왕위에 앉을지를 공포하시기를 기다리나이다
1:21 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
(도입)
과거의 역사나 현재의 역사나 할 것 없이 변하지 않는 대표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권과 권력 장악을 위한 인간의 불꽃같은 야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권력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는 꽃과 같아서 왕성할 때가 있는가 하면 시들 때가 있습니다. 한때는 천하를 호령하였던 다윗조차도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카이로스라는 특별한 시간 속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다윗의 노쇠함은 세월의 흐름 앞에 다윗이 늙었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노쇠함은 권력에 눈이 어두운 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당사자인 다윗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솔로몬이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란 것을 천명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노쇠함을 틈타 그의 허를 찌르며 선수를 치고 나온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다윗의 네 번째 아들인 아도니야였습니다. 아도니야는 서열로 따지자면 이미 죽은 세 형들인 암논과 길르압 그리고 압살롬에 이어 4위에 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세 형이 모두 죽은 현시점에서 서열 1위는 당연히 아도니야였습니다. 세 형들이 모두 사라지고 아버지 다윗마저 늙어 기력이 쇠해지자 국정에는 공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왕위의 계승 문제에 있어서 아도니야의 행위가 왕위의 찬탈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주요한 기준점은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한 개인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니 왕위에 세워질 자의 기준점 또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한 자’가 충족의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도니야의 인위적인 불손한 행위를 저지하기 위하여 두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한 사람은 이 문제를 핵심적으로 풀어갈 나단 선지자였으며 보조적인 중간 역할자로서 밧세바를 등장시킵니다.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도니야의 오만방자한 불손한 행위를 저지시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아도니야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하셨으며, 그 조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을까요?
(11~14) 하나님의 뜻을 지혜롭게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도니야의 음모가 공개적으로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기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정권의 실세들은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다윗 편에 서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권 이양에 관한 문제가 음모자들에 의하여 음밀하고, 정확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때 나단은 중요한 선택을 합니다. 첫 번째는 아도니야의 반역에 대한 사실을 다윗의 아내요, 솔로몬의 어머니인 밧세바에게 알리는 것이며, 두 번째는 밧세바로 하여금 이 사실을 다윗에게 알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신이 밧세바의 뒤를 이어 다윗에게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에 따른 충고를 통해 다윗으로 하여금 최후의 결단을 내리도록 계획합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죄악을 은폐하려 했을 때 지혜로운 비유를 통해 다윗의 위선과 허위를 폭로했던 선지자입니다.
나단은 밧세바를 통해 다윗으로 하여금 ‘언약적인 관점’에서 아도니야의 문제에 접근하도록 만듭니다. 이때 하나님의 뜻을 아주 지혜롭게 전하도록 합니다. “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여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이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13절) 나단 선지자는 밧세바로 하여금 왕에게 예의를 다 갖추어 왕의 심정이 상하지 않도록 겸손하게 왕에게 나아가도록 합니다. 그리고 다윗 왕으로 하여금 자신이 명세했던 것을 생각나도록 만듭니다. 그런 후, 자신이 왕을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왕으로 하여금 자신이 행할 맹세를 확증하도록 계획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위치에 서 있는 주님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입니다. 아도니야처럼 자신의 뜻을 세우려고 하다가 하나님 나라 일에 역행하는 자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나단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뜻이 잘 이행되도록 돕는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대의명분’과 ‘실리’가 앞장을 서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나단 선지자처럼 하나님 편에서 이 일들을 어떻게 이루어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지혜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5~21)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신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밧세바는 나단 선지자의 조언과 충고를 충실히 이행합니다. 밧세바는 다윗에게 아도니야의 음모를 알립니다. “이제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도 내 주 왕은 알지 못하나이다”(18절) “왕이 되었어도” 밧세바는 아도니야를 ‘왕 앞에 불법한 자’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주 왕은 알지 못하나이다”를 통해 다윗 왕으로 하여금 자신의 왕권을 발동시키도록 합니다. 다윗 왕의 왕권 누수 현상을 솔로몬을 통하여 막도록 기가 막힌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문제가 속히 해결되지 않았다면 다윗이 죽은 후 아도니야의 세력에 의해 자신과 솔로몬에게 기다려지는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으로 하여금 빠른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21절)
밧세바가 이렇게 담대하게 나단 선지자의 뜻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언약적 관점’을 이루려는 나단 선지자에 대한 신뢰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기에 처할 때 내 고집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자가 되십시오. 그 말씀에 의지하여 담대하게 나아가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신뢰하고 나아가는 자를 통해 그 뜻을 반드시 이루어갑니다.
(적용)
세상의 야망과 계교 앞에 우리는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나의 능력과 힘은 오히려 더 큰 분쟁을 일으키는 소재를 재공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는 것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향하여 변치 아니하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어떠한 세력도 하나님의 이 뜻을 변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계획은 오늘도 우리에게 유효하게 작동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약속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언약을 이루심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속화된 세상의 아도니야에게 줄 서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나 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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