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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금요일) - 하나님의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왕상 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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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13:2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13:3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13:4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13:5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징조대로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진지라
13: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도록 전과 같이 되니라
13: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13:8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3:9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13:10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아니하니라



(도입)
여로보암은 대외적으로는 ‘요새화’라는 정책을 펼치며 국방을 튼튼히 만들어 나갔으며, 대내적으로는 ‘종교 정책’으로 남유다와 구별하는 정책을 펼쳐나갑니다. 그는 ‘언약’ 안에서 여호와를 향한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합리적인 제시로 분리합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던 곳, 야곱의 ‘사닥다리 언약’이 있었던 ‘벧엘’을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합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대신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었으며 ‘성전’을 대신하여 ‘산당’을 백성들에게 제시합니다. 결정적으로 ‘장막절’의 날짜를 7월 15일에서 북이스라엘의 추수 때인 8월 15일로 새롭게 날짜를 제정합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주신 북이스라엘을 자신이 다스리는 전략적인 왕국으로 바꿔 갑니다. 이런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보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 앞에 섭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며 여로보암을 일깨웁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권력’과 ‘세도’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할까요? 여로보암 앞에 선 ‘하나님의 사람’은 여기에 대해 어떤 답을 주고 있을까요?

(1~5) 하나님의 사람은 불법을 자행하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움 없이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법한 자는 자신이 행하는 불법을 불법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올바른 길을 충고하는 자를 도리어 자신의 적대자로 여기고 그를 응징하려고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 앞에 유다 출신의 ‘하나님의 사람’이 섭니다. ‘벧엘’에서 마주친 두 사람! 그들은 각자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벧엘’을 찾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이 제정한 불법의 정당성과 합법함을 분향을 통해 백성들에게 선포하기 위해 이곳을 찾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사람’은 ‘벧엘’에서 자행되는 것이 불법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릴 뿐이라고 선포하기 위해 이곳에 옵니다.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3절)
“제단아! 제단아!”(2절) 제단을 향한 ‘하나님의 사람’의 외침은 북이스라엘의 잘못된 종교정책과 우상숭배의 모든 제반 행위들을 향한 하나님의 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약 300년 후에 있을 심판을 선포할 때, ‘요시야’라는 역사적인 인물을 통하여 그와 같은 일들이 거행될 것을 예언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명 감당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오히려 당당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순교자의 피를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두려우십니까? 스스로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역사적으로 분명히 실현됨을 의심치 말고, 세상의 불법 앞에서 떨지 말고, 두려움 없이 그 불법을 향해 하나님의 공의를 담대하게 선포하는 자가 되십시오!

(6) 하나님의 사람은 감정으로 사역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역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불법한 자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을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고, 그 죄로부터 자신을 돌이키려 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오히려 해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잡으려고 하는 여로보암의 손을 마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손 마름의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인본적인 모습으로 서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게 합니다. 황급해진 여로보암이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문제는 여로보암이 구한 하나님의 은혜는 회개를 통한 은혜의 구함이 아니었습니다.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6절)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외침에 응합니다. 여로보암의 회복은 “지금이라도 너는 너의 죄를 알아라!”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으며, “만약 지금이라도 네가 회개한다면 나는 너를 향한 진노를 돌이키겠다!”라는 뜻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손 마름과 회복을 통해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늘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사역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7~10) 하나님의 사람은 불의한 타협을 거절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늘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불법한 자는 불의의 길을, 하나님 편에 선 자는 순종의 길을 걷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여로보암의 회유를 거절합니다. 왕의 회유는 ‘함께 집에 가서’, ‘쉬라’, ‘예물을 주리라’ 등과 같이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의 반응은 단호한 거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8절) ‘들어가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리라’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어떤 유혹에도 응하지 않겠다라는 강한 부정을 피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순종합니다.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 되돌아가지도 아니하니라”(9절, 10절)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과 ‘불순종의 길을 걷지 않는 모습’은 북쪽의 불의한 선지자와 제사장들 그리고 여로보암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세속적 권력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불의의 재물을 얻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길을 걸어갑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종은 세상적인 물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불의의 길을 걷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불의한 것들과는 어떤 타협에도 응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영적으로 타락의 극치를 달려가고 있는 이 시대를 향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에 속한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를 향해 ‘세상의 빛으로’, ‘세상의 소금’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정말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앞세워 일하는 자는 아닙니까? 이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때 우리는 여로보암과 같은 불의한 자를 향해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는 다른 사람을 향해 훈계하거나, 질책하기 위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여로보암과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말씀은 지금 나의 상태는 어떠한지, 자신을 되짚어보도록 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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