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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화요일) - 타락과 심판(왕상 14: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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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 왕이 되었으니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
14:22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14:23 이는 그들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
14:24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14:25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14:26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14:27 르호보암 왕이 그 대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왕궁 문을 지키는 시위대 대장의 손에 맡기매
14:28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시위하는 자가 그 방패를 들고 갔다가 시위소로 도로 가져갔더라
14:29 르호보암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4:30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14:31 르호보암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 그의 아들 아비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도입)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주 역동적이며, 시대의 큰 물줄기를 함께 타고 흐르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야훼’와 함께 만들어간 언약의 특이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분열 왕국을 이끌었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일찍이 인정하였던 능력 있는 자였으며,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르호보암은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있었지만 교만하고, 사람을 잘 다스릴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두 왕에게는 하나님을 향해 죄를 범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우상으로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내는 ‘우상 종교의 창시자’가 됩니다. 르호보암은 본격적으로 남유다에 산당과 ‘우상’을 세우는 ‘우상의 전도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을 향해 그 집안을 철저히 심판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시퍼런 심판의 칼날은 르호보암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다윗의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해 심판의 칼을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르호보암을 심판하는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고 계실까요?

(21~24) 타락의 방관자요 우상숭배에 대해 전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는 세상 가운데서는 가치와 자격을 인정받을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는 배설물로 여김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르호보암에 소개할 때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21절)라고 말합니다. 르호보암이 누구의 영향력을 받고 자라났는지, 그가 여호와를 향해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장면입니다. 나아마는 솔로몬이 외교력 강화를 위해 정략 결혼하게 된 암몬 족속 왕의 딸이었으며 암몬 족속들이 섬겼던 ‘밀곰’의 우상을 열렬히 섬겼던 여인이었음을 성경은 ‘나아마’라는 이름과 함께 ‘암몬 사람이었다’라는 것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머니로부터 우상에 관해 철저히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던 르호보암은 우상을 섬기는 차원을 넘어 자신이 섬기는 우상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전도자’로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는 그들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23절)
그 결과 종교적인 매춘 의식 행위를 위해 ‘성전 창기’가 등장했으며,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24절)라며 영적인 타락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르호보암은 타락의 방관자요, 우상숭배에 대해 전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백성들이 닮아갑니다. “예수를 믿더라도 그 정도는 괜찮아!”라고 하면서 올바른 신앙의 길을 지도하지 못하는 ‘신앙의 방관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자는 복음의 방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정말로 큰 문제는 이런 자들이 세상 가운데서는 가치와 자격을 인정받을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는 배설물로 여김을 받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5~28) 하나님 보시기에 옆걸음을 치는 타락과 방관의 모습은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이 아니라 수치와 능욕으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B.C. 926년,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에 빠져있던 르호보암에게 커다란 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애굽의 제22왕조를 세운 시삭이 남유다를 침공합니다. 그는 여로보암이 솔로몬에게 쫓김을 당할 때 정치적인 망명처를 제공해 줬던 애굽의 왕입니다. 시삭이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남유다를 침공합니다. 남유다는 힘도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예루살렘을 함락당합니다. 패배의 후유증은 처절했습니다. 성전과 왕궁이 애굽의 놀이터가 됩니다.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은 모두 빼앗고,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전이 군화로 짓밟힘을 당합니다. 왕궁이 애굽 병사들의 전리품을 수확하는 ‘수집의 현장’이 됩니다.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은지라”(26절)
여호와를 버리고 산당을 세우며,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던 르호보암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키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번영을 위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을 섬겼지만 정작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으로부터 침공을 당하고 수치와 능욕의 결실을 맺습니다. 하나님 보기에 옆걸음치며 우상을 섬기던 자가 놋 방패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성전의 장식품이 ‘놋 방패’인 무기로 바뀐 것처럼 평화와 번영이 아니라 전쟁과 불안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옆걸음을 치는 타락과 방관의 모습은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이 아니라 수치와 능욕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9~31)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평강이 아니라 분쟁이 자신의 주변을 떠나지 않게 됩니다

르호보암을 처음 소개할 때와 그의 생을 마감할 때 동일한 내용이 소개됩니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31절) 이 말씀은 결론적으로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30절)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자들이 하나님을 떠납니다. 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들을 향해 ‘샬롬’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생의 최후를 맞이하도록 합니다. 자신의 실리를 쫓아 우상을 섬겼던 ‘우상 종교의 창시자’요, ‘우상숭배의 전도자’로 전락했던 그들은 나라의 국운을 비극의 도탄으로 빠트렸던 인물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됩니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 그리고 무지함은 하나님 앞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자’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도 그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샬롬’이 거둬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평강이 아니라 분쟁이 자신의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우리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따르고 있는가?” 신앙의 쇠퇴는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신앙에 대한 긴장의 끈을 어떤 순간도 풀지 않아야 합니다. 사탄은 이런 자들을 세상 가운데 더 높여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부질없다는 것을 만들어갑니다. 그러나 이런 영광은 잠시 존재하는 안개와 같습니다. 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배설물로 여김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항상 자신을 쳐서 말씀에 복종시키고, 온전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신앙으로 훈련시켜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신앙인으로 세워지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신앙이 게을러질 때 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신앙의 타락은 결국 심판을 불러온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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