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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수요일) - 바른 신앙관을 세웁시다(왕상 17: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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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7: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7: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17: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17: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17: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17: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17: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도입)
하나님께서는 우상에 찌들어 있는 북이스라엘의 아합 앞에 담대하게 섰던 엘리야를 더욱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그를 연단하고, 훈련을 시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정한 훈련 과정을 사람의 머리로 이해하고, 판단하여 수료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인내와 순종으로 시험을 이겨나갑니다. 이런 엘리야가 매우 황당하고, 다급한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일어났던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의 역사가 있은 후 하나님의 사명을 부여잡은 그에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자신이 머물고 있었던 집, 과부의 아들이 병을 앓다가 죽게 됩니다. 과부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엘리야의 탓으로 돌립니다. 엘리야는 당황합니다. 그는 이 난국을 어떻게 뚫고 나갔을까요?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엘리야와 과부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17~18)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신앙은 여전히 우상숭배에 따른 인과응보적 사고를 늘 가슴에 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아합과 북이스라엘을 향해 가뭄이 임하도록 합니다. 이 징계로부터 엘리야를 지켜주기 위해 사르밧에 있는 한 과부의 집을 지명하면서 그곳에서 이 난국을 견디고, 이겨나가도록 합니다. 3년이 넘는 기나긴 가뭄을 그 여인의 집에서 견딜 수 있도록 먹을 것을 마르지 않도록 합니다. 이런 와중에 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과부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게 여긴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죽습니다. 가뭄을 통해 자신과 아들이 죽을 고비를 하나님의 은혜로 넘겼던 여인이 지금 당한 이 슬픔의 원인을 엘리야에게 돌립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18절)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여전히 바알 우상과 접목점을 이루고 있었던 이 여인은 자신에게 찾아온 아들의 죽음을 자신의 신이 노한 결과로 받아들입니다. 엘리야를 통해 자신의 가정에 축복이 임했을 때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자신의 아들이 죽게 되자 그 책임을 전적으로 엘리야에게로 돌립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엘리야가 자신의 집에 머문 것이 자신이 섬기는 바알 신을 노하게 여긴 결과가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 때문에 이런 결과가 왔다’라는 ‘인과응보’에 대한 사상이 우상숭배와 연결되어 그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신앙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에 따른 인과응보적 사고를 늘 가슴에 담고 있는 영적 상태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9~22)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관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통해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만들며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를 이끌어낸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으로 하여금 아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대해 두 가지를 깨닫게 합니다. 하나는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하나님은 사람의 ‘생사’와 ‘화복’에 대해 주관자가 되신다는 것을 알도록 합니다. 엘리야는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아는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주관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21절) 과부 아들의 죽음과 과부의 예상하지 못한 항변 앞에 엘리야는 인간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강력하게 기도합니다. 이 여인이 이 장면에 대한 증인이 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 앞에 인과응보적이며, 우상의 신앙 앞에 섰던 여인은 아이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절망을 바라봤지만,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통하여 겸손히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합니다. “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22절) 하나님께서 아이를 살립니다. 이 장면은 이 연인이 섬겨왔던 신은 참신이 아니라 아무 능력도 발하지 못하는 우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과부와 같은 신앙관이 아니라 엘리야와 같은 참 신앙관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관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통해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를 이끌어낸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3~24)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관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그 믿음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꼭! 기적을 봐야만 그 사실을 믿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믿음은 처음에는 기적을 통해 믿음을 가지게 되지만 나중에는 그 기적 또한 사실인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신앙은 어떤 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그 믿음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며 자신의 삶이 윤택해졌을 때는 엘리야가 자기 집에 있어 준 것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그러다가 아들의 죽음을 보자 완전히 돌변합니다. ‘당신 때문에 우리 신이 노했다!’ 그 여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아니라 기적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부의 믿음을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으로 성화시키기 위해 한 사건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이 살아난 것을 목격한 여인이 고백합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24절) 하나님을 기적과 상황에 따라 믿었다, 안 믿었다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관은 내 속에 남아있는 과거 우상의 잔존세력과 그런 판단들을 다 떨쳐버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그 믿음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샤마니즘적인 인과응보의 사상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믿는 바른 신앙관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신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심을 고백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상황에 따라 하나님을 선택하는 죄를 범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극심한 기근과 같은 우리 삶의 여정 그리고 사망과 같은 음침한 골짜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그런 가운데서도 나를 인도하시는 왕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거친 광야를 언약 백성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여정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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