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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모임

8월 24일(월요일) - 재림과 종말의 승리(고전 15: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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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15: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15: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도입)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며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열한 제자’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오백여 형제들’의 무리에게도 보이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끝까지 거부했던 육신의 동생이었던 야고보에게까지 직접 나타나셔서 자신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이 메시아라는 것과 부활이 장차 우리 가운데 임할 죄사함에 따른 영생을 예표하고 있다는 것을 기독교의 가르침에 대해 칼을 갈고 덤벼들었던 바울에게도 알게 합니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다메섹에서 만납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광야에서 직접 3년간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런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누구보다 분명하고, 강력하게 증거하는 증인이 됩니다. 이 땅에 부활의 주님께서 재림의 주로 다시 오실 때는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이 일어납니다. 십자가에서 한편의 강도는 주님과 함께 낙원에 이르렀지만, 다른 편의 강도는 음부에 이르렀던 것처럼 우편의 ‘양’과 좌편의 ‘염소’에 대한 판결이 완전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구원’과 ‘심판’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종말이 우리에게 승리의 날로 각인되어 있고, 새겨져 있는 이날에 대해 각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흔들림 없는 재림과 종말의 신앙을 가지고 지금의 시대를 이겨나가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할까요?

(50~52)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자범죄에 대해 홀연히 씻음을 받으며 썩지 않을 영광의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를 영원히 유업으로 받게 된다는 구원에 대한 확신의 신앙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아담의 원죄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죄는 반드시 그 값이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구세주인 ‘예수’로 오시고, 그리스도로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무덤에 장사 되심은 그 값에 대한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사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전가되는 ‘새 생명’을 예표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예수의 부활이 거짓말이고, 우리에게 동일한 부활의 역사가 없다면 우리는 역사 속의 인물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첫째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인류에게 ‘사망의 열매’가 맺어졌다면,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 생명의 열매’를 맺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불신자들의 죽음과 다릅니다. 불신자들의 죽음은 영원한 저주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죽음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죄를 단절시키는 효력이 함께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날이 되면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일명 재림입니다. 재림을 알리는 나팔 소리와 함께 ‘공의로 심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십니다.(계 19:11)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완전한 나라입니다. 부패가 진행된 죽을 몸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홀연히’ 새로운 몸으로 변하게 되는 것은 완전한 몸인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홀연히’는 자범죄를 모두 씻어내는 것이 성립됩니다. 자범죄에 대해 홀연히 죄 씻음을 받아 썩지 않을 ‘영광의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를 영원히 유업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확신의 신앙으로 재림의 날을 고대하는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53~56)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은 사망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실현되며 그리스도인들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날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부활이 우리에게 증거해 주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죄가 사망을 주장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결론적으로 부활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를 말하며 사탄의 사망 권세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순간입니다. 한 마디로 ‘창조 회복’에 따른 ‘영생의 몸’이 된 것입니다. 아담이 범한 죄가 (창 2:17)의 언약대로 사망에 이르는 ‘썩을 몸’이 되게 하였다면 둘째 아담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은 (창 3:15)의 언약을 성취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은 죄로 말미암은 사망이 우리를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도록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이긴 열매였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54절)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 완전히 결정 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죽음의 공포를 이끌고 있는 사망 권세가 택한 백성을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사 25:8)과 (호 13:14)에 따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완전히 실현하게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까지 인류를 지배하던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 근원은 죄라는 것에 있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은 사망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실현되는 날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날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고 오늘도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57~58)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재림의 날, 최후의 승리는 악한 자들에게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음을 이기는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사건이었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은혜의 사건’이 결실이라는 열매로 응답받는 날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거둔 승리와 영광을 함께 누리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가 완전한 결실을 맺는 날과 연결이 됩니다. (엡 2:2)의 공중의 권세자에게 짓눌린 자가 아니라 ‘악한 권세’를 물리치고 이기는 날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입니다. 바울이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을 살아갈 때 가져야 할 첫 번째 자세는 어떤 환경과 형편 속에서도 ‘부활 신앙’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부활 신앙’이 흔들리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구원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 무너집니다.
두 번째는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을 때 자신의 수고를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않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를 더욱 기뻐합니다. 자신의 삶을 세속적 가치관 속에 빼기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업적과 성과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허무한 인생살이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재림의 날, 최후의 승리는 악한 것들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리스도인의 값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힘 있게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을 가리켜 (계 19:9)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 날’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잔치에 청함을 받을까요? 그날에 청함을 받는 자는 오직 그리스도인들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자들입니다. 이런 재림의 날에 청함을 받은 자를 가리켜 복 받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재림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부활 신앙은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까지 권세를 잠정적으로 가진 ‘공중의 권세자’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중요한 무기입니다. 부활 신앙은 마귀의 세력에 대항하여 영적 전선을 형성할 때 인내하는 신앙으로,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으로 이겨나가게 하는 중요한 신앙관입니다. 부활 신앙은 마지막 때 환난과 핍박을 이기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푯대입니다. 환난과 핍박 그리고 세속적인 권력과 부귀를 앞세워 사탄의 영이 그리스도인을 넘어뜨리려고 할 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붙잡아 주는 최종 무기가 부활 신앙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은 부활 신앙을 ‘영광의 몸’으로 확정 짓는 ‘승리의 날’입니다. 이날을 사모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날을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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