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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금요일) -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자(왕상 18: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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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8:7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그를 만난지라 그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18:8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그러하다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18:9 이르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
18:10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찾지 아니한 족속이나 나라가 없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엘리야가 없다 하면 그 나라와 그 족속으로 당신을 보지 못하였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거늘
18:11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나
18:12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영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말하였다가 그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18:13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18:14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그리하면 그가 나를 죽이리이다
18:15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 아합에게 보이리라



(도입)
오늘 본문에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 인물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는 북이스라엘 출신의 선지자 엘리야입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당시 영적으로 암흑기를 맞이하고 있었던 북이스라엘, 그것도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의 측근에서 고위직이었던 오바댜입니다. 북이스라엘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쓰임을 받고 있었던 두 사람이 만나는 사건이 전개됩니다. 그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오바댜는 아합 왕의 명을 받아서 3년이 넘는 가뭄을 해결할 물의 근원을 찾으러 나서는 길이었으며,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아 오바댜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주어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길을 떠났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길을 떠났던 두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서로 전혀 알지 못했던 이들이 드디어 만납니다. 서로가 서로를 직감합니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의 만남의 장면과 서로 간에 오갔던 대화 속에는 우리를 향해 메시지와 교훈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 어떤 메시지와 어떤 교훈을 주고 있을까요?

(7~8)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관점이라는 영의 눈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3년의 기근은 아합과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한 이미지로 부각이 되기 시작합니다. ‘비의 신’이라는 바알과 풍요의 신이라는 아세라의 허구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섬기는 신이 혹이나 노하여서 비를 내리지 않는 것인지 노심초사합니다. 정성을 다하며 바알과 아세라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수많은 반복적인 제사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언제나 동일하였습니다.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오바댜가 물의 근원을 찾으러 길을 떠납니다. 그때 뜻하지 않은 한 사람 엘리야를 만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로 하여금 오바댜가 있는 곳으로 인도합니다.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그를 만난지라”(7절) 오바댜는 자신 앞에 나타난 사람이 엘리야임을 직감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은 엘리야 그리고 오바댜는 영의 눈으로 상대가 누구인지 직감합니다.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7절) 아합의 입장에서 볼 때 오바댜가 ‘집행자’였다면, 엘리야는 ‘지명수배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 세워졌던 오바댜는 영의 눈으로 엘리야를 바라봅니다. 자신의 세상적 권위와 명예를 앞세우지 않습니다. 그가 엘리야를 ‘내 주’라고 부른 것에는 자신은 아합 왕의 심복으로 일하고 있지만 자신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담겨있었습니다. 오바댜처럼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하심을 받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먼저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이런 자에게는 엘리야가 그 앞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그의 눈에 보이게 됩니다. 이런 은혜가 그에게 임하게 됩니다.

(9~13)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음밀하게 일하는 자를 하나님은 잊지 않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자신이 찾던 물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자를 찾았다라고 아합에게 전하도록 합니다. 가뭄을 엘리야로 인한 저주로 여기고 있었던 아합은 엘리야를 잡기 위해 혈안이었습니다. 그런 엘리야를 봤다고 아합에게 전하라는 것은 오바댜를 궁지에 몰아넣기에 충분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발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오바댜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전적인 보호하심이 엘리야에게 작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를 자신이 발견하였다고 아합에게 알려본들 하나님이 엘리야를 감춰버리면 자신은 결국은 아합에게 거짓을 보고한 자가 되어 죽임을 면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르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9절)
오바댜는 비록 몸은 아합 곁에 있지만 자신의 참 주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오바댜가 행한 일들 즉 선지자 백 명에게 떡과 물을 먹인 일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음밀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필요할 때는 그를 숨겨서 보호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손을 통해 건져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완악하고 영적으로 혼탁하며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자를 위해 음밀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뱀처럼 지혜롭고, 때로는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그를 돕고, 지켜 보호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4~15)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자라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죽음과 같은 두려움 의 세력 앞에 당당하고 담대하게 서가는 신앙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오바댜는 엘리야의 출현을 아합에게 알릴 경우 자신은 죽임을 면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 엘리야는 이런 오바댜를 향하여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전해줍니다.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 아합에게 보이리라”(15절) 자신이 아합에게 알려져야 할 일이 개인적인 발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일하심임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합 앞에 서는 것이 ‘하나님의 전투’임을 밝힙니다. 엘리야는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일이며, 자신이 아합에게 목숨을 걸고 나타나려 하는 것도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일이니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당당하게 아합에게 이 사실을 증거하도록 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를 위해 ‘숨은 그리스도’인을 남겨둡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진검’을 뽑을 때가 되면 그를 엘리야처럼 불러냅니다. 이때 그의 모습은 개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능력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탄압과 회유 그리고 세속화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자가 아니라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당하고, 담대히 그들을 향해 서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자라면 죽음과 같은 두려움의 세력 앞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당당하고, 담대하게 서가는 신앙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자는 영의 눈인 하나님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자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음밀하게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자라면 죽음과 같은 두려움 가운데서도 담대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그리고 비진리를 가르치는 세속화된 거짓된 무리들 앞에 서야 합니다. 우상의 포로 된 자였던 아합 아래서도 믿음의 절개를 지켰던 오바댜처럼 그리고 극한 상황 가운데서도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일하였던 엘리야처럼 담대하고 당당하게 서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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