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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모임

4월 13일(월요일) - 하나님의 방식대로(신 3: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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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3: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3: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3: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3: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3: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3:29 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도입)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이끌었던 모세가 요단 서편의 기업을 눈앞에 두고 고별 설교를 합니다. 설교 가운데 자신이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회고합니다. 그의 머리속에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민 20장)에서 증거하고 있는 가데스에서 있었던 므리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합니다.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첫 번째 물 사건이 있었던 르비딤의 사건을 떠올립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그 방식을 앞세워 지팡이로 바위를 칩니다. 이 장면은 모세와 아론이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거룩에 먹칠한 사건이 됩니다. 이로 인해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민 33:39)에 의하면 아론은 모세보다 앞서 123세에 ‘호르 산’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이어 모세는 고별 설교가 끝나고 ‘느보 산’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신 34:7)은 증거합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던 결론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과 삶에 대해 그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요?

(23~26)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헤아리는 신앙과 삶의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는 벅찬 감동에 사로잡힙니다.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24절) 모세는 가나안 땅을 건너가서 자신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목격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강한 부정사 ‘로’를 사용하면서 모세의 기도를 당장 멈추도록 명합니다.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26절) 충격적인 말씀을 합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유는 (민 20:12) 가데스에서 있었던 므리바 사건 때문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가데스에서 행한 행동은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지 않은 자기 방식을 앞세운 대표적인 사건으로 성경에 기록됩니다.
하나님께서 명한 것보다 자신의 경험과 뜻을 앞세운 신앙이 받아들여졌다면 가나안 땅에서 일어날 사건은 눈에 불 보듯 환했습니다. 우상숭배와 세속적인 삶의 방식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의 행위를 하나님의 거룩을 욕되게 한 것으로 여기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합니다. 백성들은 이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과 자신의 뜻을 세우는 방식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신앙과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신앙 가운데 자신을 분명히 세워나가야 합니다.

(27) 하나님께서 펼쳐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며 그 비전을 실현하는 일에 앞장서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도 가길 원했던 가나안! 40년을 돌고 돌아서 왔던 가나안! 그러나 모세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헌신하고, 희생했던 40년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냉정하고 섭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26절)라는 말씀에 이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위로와 자비로 다가옵니다. ‘비스가’라는 ‘느보 산’에서 생을 마무리하기 전에 가나안 온 땅을 보도록 합니다. 이 감격과 감동을 모세에게만 펼쳐줍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지도자로서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시킨 징계였다면 ‘비스가’에서 가나안 온 땅을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은 40년 동안 수고한 헌신과 섬김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대한 공의의 값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모세는 두 기적의 산을 오릅니다. 하나는 (출 19:2)의 ‘시내 산’이었습니다. 십계명을 받기 위해 모세가 올랐던 영광의 장면입니다. 두 번째는 ‘비스가’입니다. (신 34:5)에 의하면 이곳에서 모세는 생을 마감합니다. 그 전에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펼쳐주시는 비전을 봅니다. 육신은 비록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보다 앞서서 영으로 이미 가나안을 목격하는 은혜를 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펼쳐주시는 비전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창 41:46 이하)에 의하면 요셉은 하나님께서 펼쳐주시는 비전으로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지혜의 총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펼쳐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며 은혜에 머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펼쳐주신 그 비전을 실현하는 일에 앞장서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올려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8~29)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해 확신을 심어주면서 다음 세대를 영적으로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인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자신의 다음을 이어갈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도록 명합니다.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주며 강한 믿음을 가지도록 모세에게 그 역할을 감당하도록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여호수아에게 심어주도록 합니다. 여기에 부각 되었던 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신 7:9)은 증거합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요단 서편의 가나안 정복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기업을 얻게 하리라”(28절)라는 말씀으로 약속한 땅은 이미 정복했으며 그것을 각 지파별 기업이 될 것을 확정해 줍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만물의 주인이며, 그것을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유한성을 가진 사람은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어떤 우상도 어떤 과학도 여기에 대해 실체가 될 수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만물의 주인이요, 절대 주권으로 이 만물을 친히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미래도 주관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여호수아를 확신의 신앙으로 세웠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면서 다음 세대를 영적으로 건강하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 사명과 사역을 감당하는 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기념 책에 기록되니 더욱 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방식대로 신앙하고, 하나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는 자는 미래가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을 다스려갔던 지혜가 이것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세계전도여행을 떠났던 바울의 사역은 여기에 대해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명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되었고 그 가운데 복음화라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을 기념 책에 특별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은 항상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께 신앙으로 묻고, 신앙으로 반응하는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은 어떤 목적을 위해 세상을 살아갑니까?”라고 묻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갑니다”라고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신앙과 삶이 이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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