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금요일) - 축복의 문을 열어주는 계명의 준수(신 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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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30:10 (윗절에 포함됨)
30:11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30: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30: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도입)
모세는 가나안 땅이 반드시 이스라엘의 지경이 될 것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정한 축복이 어떻게 임하게 될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열매를 맺을 것이니라!” 모세는 앞으로 전개될 이스라엘의 실패와 타락 그리고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켜 준행하느냐, 준행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 향방이 갈라진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할 때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지켜.준행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생육’, ‘번성’, ‘충만’의 축복을 줍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선악의 실과’를 금할 때도, 그것은 금지가 아니라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육’, ‘번성’, ‘충만’의 축복을 누리는 길에 들어서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에서 어떻게 해야 ‘생육’, ‘번성’, ‘충만’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지 마치 에덴동산에 있었던 아담에게 ‘계명의 준행’을 통해 그 길을 알려주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셨던 계명의 준수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열린 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해 계명의 준수는 어떤 ‘세 가지 축복의 문’으로 다가올까요?
(9~10) 계명의 준수는 명령에 복종하는 양식을 가르치기 위한 규제의 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복을 충만히 누릴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주는 축복의 문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그 복을 누릴 수 있는지 모세를 통해 그 길을 증거하도록 합니다. 모세는 그 길이 다른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키도록 명하신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 있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계명 준수’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라는 근본을 떠나면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계명 준수’는 마귀와의 영적 전투에서 속임을 당하거나 유혹당하는 일이 없도록 영적인 ‘전신갑주’를 입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이 축복한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이런 약속까지 합니다.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9절) ... 복을 충만하게 누리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침을 줍니다. (시 112:1)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눅 15장)에 등장하는 ‘탕자’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아들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복을 충만히 누릴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주는 계명의 준수라는 축복의 문에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11~13) 계명 준수는 먹지 못할 떡이나 그림과 같이 지키지 못할 규제가 아니라 생육, 번성, 충만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축복의 문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의 준행’은 축복에 들어서는 길이라고 알려줍니다. 문제는 계명이 지킬 수 없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계명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요, ‘재앙’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대해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니”(11, 12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다 밖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계명을 지켜나가도록 도우신다는 것을 함께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은 우리의 일상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과 ‘식일을 예배 중심으로 세우는 것’ 그리고 ‘불의한 삶을 살아가지 않는 것’ 그리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계명을 바탕으로 이루었을 때 성령께서 이 모든 것들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화복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께서 “생육, 번성, 충만”의 ‘축복의 문’을 열어줍니다. 계명의 준수는 먹지 못할 떡이나 그림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계명을 지켜나가도록 능력을 줄 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해 도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의 준행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 목적을 이루는 길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미 축복하신 “생육, 번성, 충만”의 축복의 결실을 누리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문’이 되어준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4) 계명은 닫힌 말씀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 말씀을 지켜 준행하는 자에게는 차별 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인도하는 축복의 문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도록 명하신 계명은 깨닫지 못하도록 감춰지거나 알지 못하도록 닫힌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도록 명하신 계명은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14절)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칠 수 있도록 그리고 강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 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은 “네 마음에 있은즉”(14절)라고 말씀하셨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은 아는 것으로 끝나는 ‘머리의 신앙’이 아니라 ‘마음 판’에 새기는 ‘인격적 신앙’으로 그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눅 24:45)은 말합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계명을 지켜·준행하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을 때 우리의 역할은 머리로 아는 것으로 끝나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이 축복의 동산을 이루도록 계명이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계명을 성화시키는 ‘인격적 삶’을 이뤄가야 합니다. 그럴 때 계명은 축복의 동산을 이루는 생명력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법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계명이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계명이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은혜로 다가오는 ‘축복의 문’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무너져버린 축복의 동산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그 문과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모든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법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동산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길이요, 문입니다. 마귀는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의 동산에 오르지 못하도록 강력한 영적 전투를 펼쳐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이길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법을 지키는 계명의 준수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법으로 생명의 울타리를 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계명의 울타리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생육, 번성, 충만”하게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0:10 (윗절에 포함됨)
30:11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30: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30: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도입)
모세는 가나안 땅이 반드시 이스라엘의 지경이 될 것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정한 축복이 어떻게 임하게 될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열매를 맺을 것이니라!” 모세는 앞으로 전개될 이스라엘의 실패와 타락 그리고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켜 준행하느냐, 준행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 향방이 갈라진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할 때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지켜.준행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생육’, ‘번성’, ‘충만’의 축복을 줍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선악의 실과’를 금할 때도, 그것은 금지가 아니라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육’, ‘번성’, ‘충만’의 축복을 누리는 길에 들어서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에서 어떻게 해야 ‘생육’, ‘번성’, ‘충만’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지 마치 에덴동산에 있었던 아담에게 ‘계명의 준행’을 통해 그 길을 알려주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셨던 계명의 준수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열린 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해 계명의 준수는 어떤 ‘세 가지 축복의 문’으로 다가올까요?
(9~10) 계명의 준수는 명령에 복종하는 양식을 가르치기 위한 규제의 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복을 충만히 누릴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주는 축복의 문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그 복을 누릴 수 있는지 모세를 통해 그 길을 증거하도록 합니다. 모세는 그 길이 다른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키도록 명하신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 있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계명 준수’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라는 근본을 떠나면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계명 준수’는 마귀와의 영적 전투에서 속임을 당하거나 유혹당하는 일이 없도록 영적인 ‘전신갑주’를 입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이 축복한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이런 약속까지 합니다.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9절) ... 복을 충만하게 누리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침을 줍니다. (시 112:1)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눅 15장)에 등장하는 ‘탕자’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아들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복을 충만히 누릴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주는 계명의 준수라는 축복의 문에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11~13) 계명 준수는 먹지 못할 떡이나 그림과 같이 지키지 못할 규제가 아니라 생육, 번성, 충만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축복의 문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의 준행’은 축복에 들어서는 길이라고 알려줍니다. 문제는 계명이 지킬 수 없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계명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요, ‘재앙’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대해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니”(11, 12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다 밖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계명을 지켜나가도록 도우신다는 것을 함께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은 우리의 일상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과 ‘식일을 예배 중심으로 세우는 것’ 그리고 ‘불의한 삶을 살아가지 않는 것’ 그리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계명을 바탕으로 이루었을 때 성령께서 이 모든 것들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화복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께서 “생육, 번성, 충만”의 ‘축복의 문’을 열어줍니다. 계명의 준수는 먹지 못할 떡이나 그림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계명을 지켜나가도록 능력을 줄 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해 도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의 준행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 목적을 이루는 길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미 축복하신 “생육, 번성, 충만”의 축복의 결실을 누리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문’이 되어준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4) 계명은 닫힌 말씀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 말씀을 지켜 준행하는 자에게는 차별 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인도하는 축복의 문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도록 명하신 계명은 깨닫지 못하도록 감춰지거나 알지 못하도록 닫힌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도록 명하신 계명은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14절)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칠 수 있도록 그리고 강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 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은 “네 마음에 있은즉”(14절)라고 말씀하셨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은 아는 것으로 끝나는 ‘머리의 신앙’이 아니라 ‘마음 판’에 새기는 ‘인격적 신앙’으로 그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눅 24:45)은 말합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계명을 지켜·준행하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을 때 우리의 역할은 머리로 아는 것으로 끝나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이 축복의 동산을 이루도록 계명이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계명을 성화시키는 ‘인격적 삶’을 이뤄가야 합니다. 그럴 때 계명은 축복의 동산을 이루는 생명력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법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계명이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계명이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은혜로 다가오는 ‘축복의 문’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무너져버린 축복의 동산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그 문과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모든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법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동산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길이요, 문입니다. 마귀는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의 동산에 오르지 못하도록 강력한 영적 전투를 펼쳐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이길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법을 지키는 계명의 준수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법으로 생명의 울타리를 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계명의 울타리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생육, 번성, 충만”하게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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